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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재빨리 권력의 공백을 차고 들어온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를 비롯해 저격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처벌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이들은 사건 한달만에 군법회의에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6개월도 안돼 2심과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거쳐 45년전 오늘 형장에서 생을 마쳤다.
자신을 수사한 당사자였던 전두환이 후일 내란수괴혐의에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대의 괴논리로 최초 수사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뒤늦게 기소된 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마저도 감형, 끝내 사면을 받아 바깥 세상에서 천수를 누리다 간 것과는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이들의 재판은 1심이 16일, 항소심은 6일만에 종결됐고, 재판 과정은 변호인이 후일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피의자 방어권 보장은 안중에도 없는 혼란 그 자체였다. 사형 집행도 대법 확정 판결 후 터무니없이 빠른 사흘만에 이루어졌다. 그보다 5년전 박정희 유신 정부가 인혁당 사건 8명에 대한 사형 집행을 대법 확정 판결 18시간만에 집행하며 ‘사법 치욕의 역사’를 썼던 때보다 이틀 정도가 더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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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는 있지만 유족들은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2020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5년만인 올해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재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부가 재심 청구를 인용한 사유는 간단하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강압적인 수사가 진행되었으므로 재판의 결과 또한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계엄사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재심 대상 사건으로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 고문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폭행,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형법상 폭행, 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심 결과가 어떻든 45년 전 죽은 그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한 김재규의 진의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는, 이 재심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