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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 1년, 이주노동자들은 안전해졌나[이희용의 세계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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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6.23 05:00:00

작년 산재사망 12%가 외국인, 위험업무 많고 작업환경 열악
안전장비·교육 강화, 통역 지원
신속구제·엄정 법집행 받쳐줘야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가 덮치지도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라 늘 일하던 데서 숨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선진국 한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098명에 이른다. 하루 5.7명꼴이다. 지난해 사고사망만인율(산재보험 적용 대상자 1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은 0.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29보다 훨씬 높다.

천수를 누렸어도 모든 죽음은 안타깝고 유족을 슬프게 만든다. 일터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목숨을 잃는 것은 더욱 황망하고 비통하다. 그 가운데서도 억울하고 서럽기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첫손에 꼽힌다.

지난해 외국인 산재 사망자는 102명으로 전체(2098명)의 12.3%에 이른다. 2024년 5월 기준 외국인 취업자가 101만 명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의 3.5%인 것을 고려하면 내국인 산재 사망자보다 월등히 많다.

내국인이 꺼리는 위험한 일을 맡다 보니 사망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다. 신분상 약점이 있고 국내 실정에 어두워 열악한 작업 환경에 항의하거나 무리한 지시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은 말할 것도 없고 체류자격을 어긴 취업자라면 위험도가 높아진다. 안전 교육이 미비할 뿐 아니라 현장에서 관리자나 동료 작업자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산재를 당해도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데다 방법과 절차를 몰라 피해 보상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다. 노동지원단체나 공익법률지원기관이 있긴 하지만 농어촌이나 소도시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너무 멀다.

외국인 산재 사망자들은 마지막 가는 길마저 쓸쓸하다. 비용 부담과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유족이 사고 현장에 와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신도 화장해 유골만 본국에서 인도받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6월 24일은 경기 화성시의 일차전지 제조공장 아리셀에서 화재가 일어나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등 23명이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총체적 부실로 인한 최대 규모의 이주노동자 참사였다. 아리셀 대표를 비롯한 사고 책임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뒤로도 참혹한 죽음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태국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다. 지난 12일에도 중국과 스리랑카 노동자가 각각 차량·벽면 사이와 파쇄기에 끼여 사망했다.

이주노동자 산재를 줄이는 방법은 모두 알고 있다. 안전시설과 장비 확충, 안전 수칙 및 점검 강화와 인력 확보, 안전 교육 강화, 통역 지원,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피해구제 절차 보완, 엄격한 법 집행 등이다.

그러나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귀찮고 번거롭다는 핑계로,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을 무시하는 편견으로 위험한 산업 현장을 지금까지 방치해 온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사망 사고 위험에 훨씬 더 노출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 예방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국인이어서 목소리가 작고 분산해 있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면 우리나라 전체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왔다가 차디찬 주검이나 한 줌 재로 모국에 돌아간다면 그의 가족, 친구, 이웃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겠는가. 더욱이 고용주가 사고 경위를 은폐한 채 사과와 보상마저 거부한다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요즘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 덕분에 국내 외딴곳에서 일어난 일도 곧바로 이주노동자 고향에 알려지고 금세 주변에 퍼진다. 경제성장과 민주화, 한류 등으로 쌓아올린 우리나라의 국격과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 이제는 각국이 노동력 유치 경쟁을 벌이는 시대고 노동자들도 취업하고 싶은 나라를 고르는 세상이다.

구구한 설명 다 필요 없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우리가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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