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출신인 박병석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은 지난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주최한 국가원로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집권 기간 내내 야당과 강대강 대치를 벌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국 헌정사 두 번째로 파면되자 이제는 절박하게 여야 협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탄핵정국 초기부터 이슈화된 개헌 외에도 협치를 위해 국회도 달라질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
◇ “중대선거구제 도입해야 대화·타협 가능”
정치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만큼 국회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22대 국회는 범야권 192석의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여야의 소통이 사라지고 대신 정부(대통령실)-야당의 힘대결만 반복됐다. 야당을 막을 수 없는 여당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만 의존했고, 반대로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은 탄핵 카드를 남발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자성이다.
현행 선거제도, 특히 소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1명의 당선자만 선출) 개편은 다수의 정치원로들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승자독식 구조인 데다 사표가 지나치게 많아 국민들이 오히려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도록 한다는 우려에서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최근 국가원로 토론회에서 “22대 총선에서 여야의 전체 득표율 차이는 5.4%포인트에 불과했으나 양당의 의석수는 71석(지역구 기준) 차이가 났다”며 “그렇기에 2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선거부정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중대선거구제(한 선거구의 복수의 당선자 선출)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김 전 의장은 “서울을 12개 선거구로(현 49개 소선거구) 나눠 한 선거구에 4명씩 뽑는다면, 1당이 아무리 많이 이겨도 30석을 넘기 어렵고 2당이 아무리 져도 20석 이하로 안 떨어진다”며 “이렇게 되면 정치권에서 공존·대화·타협이 가능할 수밖에 없고 선거 문화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원내각제 국가라 직접 비교는 다소 어렵지만, 독일도 나치 정권의 비극적인 경험으로 승자독식 선거제의 위험을 깨닫고 단일정당이 사실상 과반을 차지할 수 없도록 하는 선거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성향이 다른 정당끼리 협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독일은 지난 2월 총선에서도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이 승리했으나 의석 과반수가 되지 않아 중도좌파정당인 사회민주당(SPD)과 연립정부를 구성키로 했다.
|
◇ 여야정 상설협의체 등 필요…“정치의 사법화 경계”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 협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언급되고 있다. △여야정 국정협의체 상설화 △교섭단체·상임위 운영규칙 개선 △초당적 특별위원회 상설화 등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정치 복원 및 협치를 위한 방안 등으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문재인 정부에서 한차례 가동되면서 주목을 받았으나 2018년 첫 회의 이후 흐지부지됐다. 윤석열정부에서는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처음으로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열렸지만, 민주당이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토하면서 중단됐다. 차기 정부에서 국정협의회가 다시 상설화될 경우 협치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정치와 협치의 복원을 위해 정치권 내에서 해결할 일을 사법기관에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마은혁 후보자 미임명 문제를 정치권 내에서 조율하지 못하고 결국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거나, 여야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의결 정족수 문제를 결국 헌재에 던진 것도 대표적인 정치의 사법화다. 선거 결과나 공천 및 정당 내 갈등 역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으로 달려가는 사례도 잦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가장 큰 문제는 정치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모든 것을 사법부에다 얘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닌 법치”라며 “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사법부의 정치화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권이 민주주의 기본원칙부터 고민해봐야 하다는 조언도 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상호 다를 수 있다. 서로 달라야 한다(Agree to Disagree)’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이해와 인정을 늘려 가야한다”며 “다수결·거부권·탄핵과 같은 힘의논리를 가능한 자제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