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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보는 정치 보복은 절대로 없다고 언급하지만 내란 종식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밝히면서도 전직 대통령과 인연 그리고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 제기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은 경우도 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진영 간 골이 500m였다면 지금은 그 골이 5만m 이상이라는 자조 섞인 정치권의 고해성사가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통합보다는 대결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뉴스핌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5월 12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동응답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6.5%,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하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사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26.3%는 ‘내란심판’을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로 선택했다. ‘입법 독주 등 거대 정당에 대한 견제’는 23.9%, ‘정책 및 공약’은 20.6%로 집계됐다. 진영 간 대결 구도로 해석될 수 있는 후보자 선택 이유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통합’ 13.1%, ‘정치경력’ 6.8%, ‘소속 정당’ 5.5%, ‘개인적 연고 또는 출신 지역’ 0.8% 순이었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9%였다. 국민통합은 고작 응답자 10명 중 1명 정도가 선택했다.
12·3 비상계엄이 헌재에서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다 보니 ‘내란심판’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고 ‘입법 독주 등 거대 정당에 대한 견제’라는 응답이 높게 나온 것은 민주당의 잦은 탄핵에 대한 보수층의 반감이 높게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 자체의 성격이 심각한 대결 구도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내란심판’ 의견이 절대적으로 높고 국민의힘 지지층은 ‘거대정당 견제’가 매우 높은 비율로 나왔다. 어느 쪽이든 국민통합과 거리가 멀다. 당선된 대통령이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고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는 순간 국민 통합과 이별하게 되는 셈이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지층의 국민통합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이라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지난 5월 20~22일 실시한 조사(전국 1002명 무선가상번호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17.8%,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대선 후보들 중에서 국민 화합과 갈등 해소를 누가 잘할 것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재명 후보 지지층에서 김문수 후보를 선택한 비율이 1%밖에 되지 않았고 김문수 후보 지지층 중에서도 이재명 후보를 인정한 경우는 1%에 머물렀다. 극단적인 진영 간 충돌 인식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다음 대통령이 ‘통합’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요구는 필요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다. 8년 전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걸고 탄핵 이후 국정 철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이념적 대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념이 서로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술자리도 함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선진국들도 정치적 충돌은 여야 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국민을 대립하게 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작태는 허용하지 않는다. 다음 대통령이 진정한 ‘통합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