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야트막한 언덕길에 자리한 은천2단지에서 만난 80대 주민은 김문수 대선 후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 후보를 ‘평소 동네에서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첫 답변이 바로 ‘검소’와 ‘평범’이었다. 3선(15·16·17대) 국회의원과 재선(제32·33대) 경기도지사, 고용노동부 장관 등의 길을 걸어온 그였지만, 다른 고위공직자들과 달리 소탈하고 청렴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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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70대 임 모씨는 김 후보의 소탈한 일상에 대해 전했다. 그는 “(김 후보가) 일요일마다 나와서 분리수거도 하고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단지가 더럽다 싶으면 자기가 빗자루 들고 와서 놀이터나 길바닥을 쓸고 청소하면서도 내색 한번 안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항상 웃고 다니고 인사성도 밝아 놀이터에 앉아 있는 할머님들 만나면 같이 사진도 찍고 하는 걸 봤다”며 “내게도 말을 건네왔는데, 주로 ‘같이 산에 가자’나 아니면 ‘건강하시라’ 이런 말이었다”고 전했다.
단지 아래 인헌시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한 중년 여성은 “여기 살면서 김 후보가 양복 입은 모습은 한 번도 못봤다”며 “늘 점퍼 입고 다니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지 뒤에 관악산이 있는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등산을 자주 가고, 연주대에서도 지인들과 등산하는 것을 여러번 봤다”며 “운동화를 손에 들고 맨발로 등산을 하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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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 후보가 이번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신고한 재산은 배우자 명의의 이곳 25평짜리 은천아파트(4억8000만원)와 예금(5억4000만원·배우자 포함) 등 10억원에 그친다. 띠동갑 아래인 이재명(30억원) 후보의 재산 3분의 1에 불과하고, 미혼인 40대 초반 이준석(14억원) 후보보다 적은 금액이다. 김 후보의 검소함은 생수 물병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측근은 전했다. 이번 대선 기간 김 후보를 24시간 동행하고 있는 최환희 수행부실장은 “보통 생수를 마시고 한 두 모금 남았을 때 시간이 지나면 버리잖아요. 그런데 후보님은 다 드실 때까지 절대 안 버리십니다. 보좌진들이 교체하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이러한 생활상은 과거 노동운동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보수 정당 소속이지만,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전설로 불릴 만큼 젊은 시절에는 ‘노동운동’에 모든 것을 불태웠던 그다. 1970년 서울대 상대(現 경영학과)에 입학 이후 “혁명을 통해 노동자와 빈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년 이상을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사회 불평등을 깨부수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이뤄내려는 애국심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에 사익보다 늘 공익에 무게를 두는 삶을 택했다.
이러한 가치관에 김 후보는 200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받을 수 있었던 수억 원대의 보상금도 일절 받지 않았던 것도 유명하다. 당시 김 후보는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내가 국민 세금을 또 받으면 되나”라며 신청하지 않았다. 또한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외동딸을 결혼시키면서도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부인과 가족, 주변 인물들이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다. 김 후보가 지난 2004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제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을 때엔 역대 공천 중 가장 깨끗했다는 평가와 함께 ‘청렴과 원칙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관급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던 시절(2022~2024년)에는 관용차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김 후보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차명진 전 국민의힘 의원도 김 후보의 장점을 ‘표리동(表裏同)’으로 꼽았다. 겉과 속이 똑같다는 뜻이다. 김 후보보다 8살 아래이면서 서울대 후배인 차 전 의원은 1980년대 노동운동 동지였고, 지금은 정치적 노선을 함께 걷는 동료 의원이다. 1996년 김 후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때 보좌관을 맡았고, 이후 김 후보의 지역구(경기 부천)를 이어받아 국회에 입성한 바 있다. 그는 “김 후보가 1990년대 초에 ‘노동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전향할 때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변절자라 했지만, 나는 그에게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당시 구소련 등 유럽국가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정치투쟁 시대는 끝났고,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시장경제체제를 수호해야 한다’고 했던 김 후보는 그 신념을 지금껏 변치 않고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김 후보의 ‘한 우물만 파는 올 곧은 신념’이 때론 고지식하게 다가와 답답할 때도 있다고 차 전 의원은 전했다. 차 전 의원은 “너무 교과서 같고 지나치게 고집이 세다”며 “솔직히 말하면 자기 잇속(利속)도 좀 차리고 해야 되는데 너무 원리 원칙대로만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김 후보는 너무 물이 맑아서 고기가 안 꼬일 수 있다’고 할 정도”라며 융통성이 부족한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다만 이러한 점에서 김 후보를 향해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따라 하고 싶지만 따라 하기 힘들다. 늘 쫓아가야 되는 스승의 위치에 있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는...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한일도루코 초대 노조위원장 △노동인권회관 소장 △제2기 노사정위원회 위원 △제15·16·17대 국회의원 △제32·33대 경기도 도지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