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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에 남겨졌던 동물들…재난 매뉴얼에도 없었다

이재은 기자I 2025.04.07 06:00:00

케어·카라·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 인터뷰
“통계 낼 수 없을 정도로 반려동물 피해 많아”
“재난 대응 매뉴얼에 반려동물 조항 신설 필요”
“늘어나는 반려동물·기후위기 대비책 마련해야”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난달 발생한 시작된 산불로 총 31명이 숨지고 51명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반려동물의 피해도 참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동물 보호 단체들은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광범위하다”며 재난 대응 매뉴얼에 반려동물 관련 조항이 신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길 속에서 새끼들을 품에 안고 버티던 중 구조된 ‘애순이’(왼쪽), 동물자유연대가 마을 주민 등의 제보로 3일가량 수색을 벌인 뒤 구조한 화상을 입은 고양이. (사진=동물자유연대)
◇농기계 묶인 채 불에 탄 반려견 ‘삐삐’

화재 직후부터 구조에 나선 단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해가 가장 컸던 경북 안동을 비롯해 영덕, 영양, 청송 등지에서 화상을 입거나 불에 타 숨진 개와 고양이가 다수 발견됐다. 동물권단체 케어 측은 “산불 발생 이후부터 심하게 화상을 입은 동물들을 계속 발견하고 있다”며 “현장 수색과 구조, 병원 이송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케어 측은 청송에서 구조한 반려견 ‘삐삐’의 사례를 언급하며 재난 상황 발생 시 목줄 절단 필요성을 강조했다. 삐삐는 농기계에 묶인 채 불길을 피하지 못해 심한 화상을 입었고 발견 당시에는 두 눈까지 녹아내린 상태였다고 한다. 케어는 “농기계가 쇳덩이라 열을 빠르게 전달하면서 화상 정도가 훨씬 심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삐삐에게서는 화마가 지나간 이후 며칠간 방치됐던 흔적도 있었다고 했다. 삐삐는 동물병원 진단 결과 최소 4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케어는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 대피 매뉴얼의 부재와 목줄을 짧게 매어 두는 등 양육 문화로 반복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어 측은 “산불 발생이 예측되는 시기부터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대피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반려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호자들이 쇠 목줄만큼은 사용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쇠 목줄의 경우 화재 발생 시 열전도율이 높고 구조 과정에서도 절단되지 않는 등 피해를 더 키우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농기계에 묶여 화상을 입은 반려견 ‘삐삐’가 구조될 당시 모습(왼쪽), 삐삐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케어)
◇“재난 시 생존 위해서라도 ‘마당 개’ 문화 근절돼야”

5개 단체와 연대해 ‘루시의 친구들’ 이름으로 구조 작업을 해온 동물권행동 카라 또한 한 반려견의 사례를 공유하며 마당에 묶여 살아온 동물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미약하게 숨만 붙은 채 발견된 이 반려견은 눈, 코를 비롯한 전신이 녹아 근육층이 무너지는 등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에 카라 측 응급진료 이후 동물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수의사 3명으로부터 인도적 안락사가 권고됐다. 이후 수의사들의 동의 아래 안락사가 진행됐고 산불 현장에서 숨진 반려견들과 함께 장례가 치러졌다.

카라는 해당 사례를 두고 “개는 케이지에 갇히거나 목줄에 묶여 있지 않았지만 도망가지도 않고 마당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며 “평생 묶여 살아온 동물들은 위험 상황에서 도망가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 활동 중 목줄이 풀려 있음에도 움직이지 못한 채 피해를 입은 사례를 보기도 한다”며 양육 방식을 넘어 생존권의 문제로서 ‘마당 개’ 문화가 근절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지난 4일까지 경북 의성에서 반려동물 임시 보호소를 운영했던 동물자유연대는 반려견을 위해 대피소 밖에서 생활하던 A씨 이야기를 공유하며 재난 상황에서 동물 보호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씨는 산불로 집이 전소돼 대피소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반려견을 돌보기 위해 4일가량 차와 텐트에서 생활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피소 안에는 반려견이 들어갈 수 없고 행정안전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에도 반려견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통상 대피소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입소할 수 없기에 임시 동물 보호소가 없었더라면 이분은(A씨는) 계속 차에서 생활하거나 마땅한 보호처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증가하는 반려동물과 재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행안부 매뉴얼에 반려동물에 대한 임시 보호 관련 내용이라도 넣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가 경북 의성군 보호소 측 요청으로 입소 동물들을 대피시키는 모습. (사진=동물자유연대)
◇“울진 산불 3년 흘렀는데 또다시 피해 반복”

아울러 이들 단체는 2022년 울진 산불 당시와 비교했을 때 보호자들의 인식은 다소 개선된 것으로 체감했다면서도 반려동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 개편이 뒤따르지 않으면 재난 상황에서의 피해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소연 케어 활동가는 “산불 현장에서 구조·수색 작업을 하며 뜬장에 갇혀 불타거나 200마리 규모 번식장 안에서 화상을 입거나 숨진 아이들도 발견했다”며 “기후위기 상황에서 산불과 같은 재난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반려견에 대한 보호 및 총체적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신주운 카라 정책변화팀장은 “울진 산불이 발생하고 벌써 만 3년이 지났다”며 “당시 반려동물 피해 방지책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었다면 이번 경북 산불 현장에서 참혹한 장면은 재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 대응 매뉴얼이 강화되는 것과 동시에 마당에 개를 묶어두고 평생을 키우는 사육 방식에 대해서는 일부 계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상준 동물자유연대 사무처장은 “마을 주민의 제보와 협조로 산불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여러 차례 구했다. 청송에서 3일에 걸쳐 구조한 화상을 입은 고양이부터 화마 속에서도 새끼들을 품에 안고 보호한 반려견 ‘애순이’까지 정말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며 “지자체 대피소에 동물 보호소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재난 상황에서도 동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근원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재차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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