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결정이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한 지 약 35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후임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헌법 68조에 따라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탄핵 찬반을 둘러싼 논란은 준내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헌법 수호기관인 헌재의 결정은 단심제이며 불가역적이다. 지금 국운이 백척간두에 걸렸다. 바깥에선 통상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통합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한다.
윤 전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이 정한 요건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을 수용하는 한편 지지자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하기 바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의 힘으로 탄핵을 남발하고, 걸핏하면 법안을 단독 강행 처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 민주당이 총선을 거쳐 의회 다수당이 된 것 역시 국민의 뜻이다.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구조 아래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지 못했다. 야당의 횡포를 빌미삼아 계엄 카드를 꺼낸 것도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탄핵안 발의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늘 파면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반대한다는 의견을 앞섰다. 윤 정부의 단명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당부한다. 헌재의 결정이 민주당과 이 대표의 행동에 죄다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헌재는 선고문에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탄핵 국면에서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선 유력 후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감 또한 만만찮다. 이 대표가 2022년 대선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중도층을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펴야 한다. 이 대표는 파면 선고가 나온 뒤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파면된 것은 다시는 없어야 할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대통합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 경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무리한 줄 탄핵과 입법독주부터 사라져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당부한다. 대통령 리더십 공백은 두 달가량 더 이어진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책무를 다하기 바란다. 파면에 반대하는 시위가 자칫 시민의 안전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경제수장인 최상목 부총리는 트럼프발 통상 압박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에 이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다. 여야 정치권도 대외 통상만큼은 한 목소리로 정부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 개헌도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 잇단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서 보듯 87체제는 시효를 다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힘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복합위기를 맞았다. 지난 몇 달간 안에선 계엄·탄핵으로 정쟁이 끊이지 않았고, 밖에선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자유무역이 종언을 고할 참이다. 내우외환이 따로 없다. 한국은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다. 그러나 세계 무역질서의 틀 자체가 보호무역으로 바뀌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도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판이다.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구멍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행히 헌재 선고를 계기로 내부의 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이제 정치·사회적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때다. 4개월 전 계엄이 선포되자 전세계가 한국을 주시했다. 이제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