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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삼성 파운드리가 가야 할 길

김정남 기자I 2025.04.07 06:15:00

대만·미국업체 잇단 합종연횡
中은 정부 지원 업고 턱밑 추격
파운드리는 꼭 지켜야 할 사업
삼성, 전통적 범용 전략 바꾸고
팹리스와 분사 여부 고민해야

[이데일리 김정남 산업부 차장] “말 그대로 전례 없는 지각변동입니다.”

요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가 미국 인텔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한 외신 보도가 나오자, 업계 인사들은 “올 게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지난해 4분기 점유율은 67.1%에 달한다. 반면 인텔은 0%대다. TSMC가 경영난에 빠진 인텔과 협력할 합리적인 이유는 찾기 어렵다. TSMC는 미국으로 숙련 인력들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크다고 한다. 그럼에도 합작회사 설립은 기정사실화한 시나리오다.

산업계 한 고위인사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 시장에 정치가 강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인텔 살리기’를 상수로 놓는 것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똑같다”고 했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은 곧 TSMC다.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지켜주는 대신 미국 반도체와 협력하자는 압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파운드리 4위인 대만 UMC(4.7%)와 5위인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GF·4.6%) 합병설 역시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둘의 점유율을 더하면 8.3%로 2위인 삼성전자(8.1%)보다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3위인 중국 SMIC(5.5%)는 정부 지원을 업고 빠르게 뒤쫓고 있다. 판이 바뀌는 합종연횡이, 경제 논리에 정치 논리가 얹어진 ‘고차방정식’으로 진행 중인 셈이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판세가 불리한 삼성이 무엇을 해야 할지 냉정하게 살피는 일이다. ‘세계 초일류’ 삼성 신화는 관통하는 전략이 있다. 가격을 낮춰 시장에 진입한 뒤, 규모의 경제를 이뤄 점유율을 높이고, 프리미엄 전략을 가미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TV, 스마트폰, 메모리 모두 이렇게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파운드리 사업은 다르다. 규격화라는 게 없다. 고객사들의 요구가 다 달라서다. 범용 전략이 통하는 구조가 아니다. 삼성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일하는 전통을 뿌리부터 바꿔야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삼성 파운드리가 팹리스(설계 전문)와 한지붕 아래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 인사는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사가 삼성 팹리스의 경쟁사라는 점은 한 번쯤 숙고해봐야 한다”고 했다. 삼성 반도체 투자액을 메모리, 파운드리, 팹리스가 나눠 써야 하는 점 역시 파운드리 전문 TSMC와는 출발부터 다른 지점이다. ‘우리 한 번 열심히 해보자’ 정도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즐비한 게 현실이다.

최근 업계와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분사해 나스닥에 상장해야 한다느니, 테일러 공장을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다만 확고한 전제는 있다. 제조업 국가대항전 시대에 삼성 파운드리는 꼭 지켜야 하는 자산이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 1993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같은 뼈를 깎는 결단이 필요하다. 익숙함과 작별하는 이재용식(式) ‘사즉생’의 첫 결과물은 파운드리에서 나와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 위기는 곧 기회다.

중국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공항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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