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068h
device:
close_button
X

[공관에서 온 편지]사우디가 한국에 바라는 것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김인경 기자I 2025.05.30 05:00:00

빈 살만 왕세자 ''비전2030'' 이후 사우디 극적 변화
석유 중심 경제구조서 기술·문화·관광 성장동력으로
한국, 사우디 건설개발 이끈 과거 넘어 미래산업 동반자로
2030년 리야드 엑스포·2034년 월드컵 등 韓 역할 기대도

문병준 주사우디대사대리(사진=외교부)
[문병준 주사우디대사대리] 2000년 하반기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에 처음 부임했을 때 리야드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였다. 영화관은 단 한 곳도 없었고 여성들은 전통적인 검은색 의복인 니캅을 착용한 채 남성 보호자와 함께 외출해야 했다. 외국인과 현지인이 어울리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으며 금요일이면 도시는 종교적 정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다시 찾은 사우디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차량을 운전하고 도시 곳곳에서는 문화예술 행사와 국제회의가 활발히 열렸다. 카페에서는 얼굴을 드러낸 여성들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한국 드라마와 K팝에 익숙한 현지 젊은이들은 반가운 듯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 극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2016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발표한 국가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이 있다. 이는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 첨단 기술, 문화, 관광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이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이제는 사우디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사우디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 수많은 한국 건설 노동자들이 이곳 사막에서 흘린 땀방울은 여전히 사우디인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당시의 협력은 한국 산업화의 기반이 됐으며 사우디는 그 경험을 공유한 파트너로서 한국을 신뢰하고 있다. 한국의 첫 중동 건설 진출지이자 최대 원유 공급국, 해외 건설 누적 수주 1위국인 사우디는 이제 미래 산업의 동반자로서 한국과 다시 도약하길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제 ‘석유 부국’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스마트시티, 인공지능(AI), 우주 산업, 신재생 에너지,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네옴시티와 같은 초대형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2030년 리야드 엑스포와 2034년 월드컵보다 실현 가능성이 큰 국제 행사 준비에서도 한국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동을 여전히 석유, 테러, 사막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특히 사우디는 첨단 기술을 향한 야심 찬 도전을 통해 중동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 주요 산유국이자 글로벌 에너지 안보의 핵심축이며 57개국이 속한 이슬람 협력기구(OIC)의 중심국으로서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택할 만큼 지정학적·종교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제는 단순히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상호 발전적인 파트너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우디는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를 원하고 있다.

물론 변화에는 속도 차이가 있고 종교적·문화적 제약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기업들이 진출할 때 법적·행정적 장벽, 현지 파트너십 형성, 문화적 차이 등은 여전히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한 기회임은 분명하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이 변화의 파트너는 누가 될 것인가’. 사우디는 분명히 손을 내밀고 있다. 기술력, 신뢰 그리고 문화적 연대감을 갖춘 한국이 그 손을 잡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다른 나라가 차지할 것이다. 기회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포착하려면 신중하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사우디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며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Not Authoriz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