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기업 ‘전력 직구’ 허용
30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위원회는 지난 28일 제310차 전기위원회에서 SK어드밴스드의 전력 직접구매 신청에 따른 3만킬로볼트암페어(㎸A) 이상 대용량 소비자 전력 직접구매 규칙을 최종 승인했다. 전력 다소비 기업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기를 직접 사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기위의 승인으로 당장 31일부터 새 규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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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전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등 발전 연료 급등 여파로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했는데, 산업용 전기 요금이 특히 많이 올랐다.
3년 누적 인상률 기준 산업용은 약 70%, 일반 가정·상업에 대한 주택·일반용은 약 40%다. 최근 2번 산업용만 따로 요금을 올린 데 따른 것이다. 이 여파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미국·중국 등 일부 국가보다 높아졌고, 급격히 늘어난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살 길을 찾아 나섰다.
SK그룹의 프로필렌 제조사인 SK어드밴스드는 모회사 격인 SK가스를 비롯해 SK(034730) E&S, SK이터닉스(475150) 등 여러 발전 계열사가 있는 만큼 전력을 직접 사올 여건이 있다. 한전에 내야 할 전력망 이용료를 고려하더라도 1킬로와트시(㎾h)당 20원 이상 비용 부담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의 올 1월 기준 전기 평균판매단가는 1㎾h당 172.5원이고, 1월 전력도매시장 내 판매단가(SMP)는 117.13원으로 약 55원가량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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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전력 직접 구매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기업 한전이 오랜 기간 적자를 감수하고 전기를 판매한 탓에 총부채가 205조원까지 불어난 상황으로, 당분간 전기요금을 내리기는커녕 더 올려야 할 요인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기업에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의 11.7%가 전력 직접구매나 자가발전소 건설을 통해 전기요금 부담을 낮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요금이 더 오르면 이를 추진하겠다는 응답(27.7%)을 포함하면 기업 열 중 넷이 ‘탈한전’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실제 많은 기업이 자체 발전소를 짓는 식으로 자체 비용부담 완화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와 현대제철(004020) 등이 발전소를 지었거나 짓고 있는 가운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자체 발전소 건설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탈한전 가속이 자칫 한전에 남은 대부분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제기되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한전 전기요금이 쌀 땐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사고 비싸지면 다른 곳에서 사는 식으로 옮겨간다면 한전에 남은 소비자가 이에 따른 비용적 부담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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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예전에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할인받았던 고객은 ‘미수금’을 안고 있는 셈”이라며 “이런 고객이 가격이 오른다고 그냥 나가서 남은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지 않도록 기존 할인분 부담 의무를 지우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살 길을 찾아 나선 기업보다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렸던 정치권의 잘못이 더 크다”며 “산업용 외 다른 용도 요금도 원가 수준에 맞춤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전 재무구조가 더 악화하는 건 막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