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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의 결과, 아무도 모른다[김학균의 투자레슨]

최은영 기자I 2025.04.10 05:00:00

美 인플레·증시조정, 트럼프도 예견한 일
확신 가진 보호주의 정책, 결과는 불확실
美 경기 침체, 증시 조정장 돌입은 거의 확실
증시 밸류에이션 가늠한 투자 전략 세워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증시가 크게 휘청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로 명명한 상호관세 부과 직후 미국증시가 먼저 무너졌고 그 여파가 글로벌 증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 직후 첫 2거래일 동안 미국 S&P500 지수는 10.5% 하락했는데 단 2거래일 동안 두 자릿수대의 하락률이 기록된 경우는 1928년 이후 미국 증시의 2만4433거래일 중 단 19일에 불과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주에 대해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노버디 노스’(Nobody knows),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주가 전망을 비롯해 미래에 대한 예측 행위는 과거의 경험에 몇 가지 미세 조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과 같은 고율 관세 부과는 딱히 비교해볼 만한 사례가 없다. 대공황 직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제정되면서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전쟁이 벌어졌던 1930년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도 오래전 일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경험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상정책에서 관세를 들고나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최근의 관세 폭탄은 1기 집권기와는 비교불가이다. 무엇보다도 관세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와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일부 항목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관세로 인해 미국인들이 입을 타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관세 부과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미국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은 보호무역이 초래할 부작용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트럼프 행정부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관세 부과로) 고통이 따를까. 그렇다. 그러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이 모든 것은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발언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4월 초 상호관세 부과로 미국 증시가 폭락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은 경제 혁명이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끈기를 갖고 버텨라”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관세는 단지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도구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금융시장이 비명을 질러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카드를 완화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유무역이라는 잣대로 보면 보호무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확신범에 가깝다고 본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서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떤 견해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해온 자유무역의 질서가 극적으로 붕괴하는 초입의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기 힘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투자는 모든 것을 알아야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답을 내리기 어려운 거대담론보다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영역으로 관심의 폭을 좁혀야 한다.

먼저 미국 경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없었더라도 올해는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는 2023~2024년에 2.9%와 2.8%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2% 내외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세였다. 특히 2023년에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을 썼음에도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거의 전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공격적인 재정지출 덕분이었다. 2023년과 2024년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7%대를 기록했다. 비대한 정부의 역할을 줄이기 위해 일론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정부효율부’를 신설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정의 성장 기여도는 전임 정권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GDP 계산식에서 정부지출을 제외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미국 경기는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식시장은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아직 충분한 가격 조정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S&P500 지수는 4월 들어 급격한 조정세를 보이면서 지난 2월 19일 사상 최고치 대비 21.3% 조정을 받았다. 적지 않은 타격이지만 2022년 조정 국면에서 기록한 하락률 27.5%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단기적으론 가파르게 하락했지만 전체 조정 강도가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밸류에이션 부담도 아직 높다. 4월7일 종가 기준 S&P500 지수의 2025년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에 달하고 있다. 1985년 이후 PER 20배 이상에서 S&P500 지수에 투자했을 경우 1년 후 수익률은 연평균 0.3% 상승에 불과했고 3년과 5년 수익률은 연평균 -0.9%와 -1.2%를 기록했다.

미국 증시의 추가 조정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미국 증시는 사상 유례없는 장기 강세장을 구가해 왔다. 중간 조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정의 기간은 1년을 넘지 않았다. 길게 보면 큰 굴곡 없이 16년의 강세장이 이어져 왔던 셈이다. 주식시장의 강세 덕에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가계금융자산은 108.3조 달러나 늘어났다. 2024년 미국의 명목 GDP 규모가 29.7조 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로 주식시장을 통해 증식한 가계금융자산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식시장의 추가 조정이 이어질 경우 부(負)의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민간소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와 달리 가격부담이 크지 않고 밸류에이션 부담도 거의 없다. 2300~2400선을 오가고 있는 코스피(KOSPI·유가증권시장)의 절대 레벨은 2017년 수준에 불과하고 2025년 예상실적 기준 PER은 8.23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77배에 그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조정을 나타낼 경우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조정의 강도는 미국보다 약할 것이다. 추가적인 조정을 두려워해 주식 비중을 줄일 시점은 아니다. 저평가됐다는 것은 추가적인 조정이 있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기다려볼 만한 가격대라는 의미다. 저평가가 당장의 주가 반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가격에 팔지 않고 견디는 것도 투자자가 견지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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