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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새로운 '안전 거버넌스'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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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5.28 05:00:00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기고
규제도 자율도 실패 되풀이…안전관리 새 패러다임 절실
회계감사처럼 안전 외부감사
결함 발견되면 시정 지도하고 성과 보이면 인센티브 줘야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또다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새로운 나라’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비전, 구체적인 정책,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다.

정치가 ‘새로운 시대’를 말하려면 그 시작은 국민의 삶 속 가장 절박한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와 안심할 수 있는 일상이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아리셀 화재, 화성 제약공장 폭발사고 등 크고 작은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 사회는 불안과 분노에 휩싸인다. 이러한 재난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와 관리 시스템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사후 처벌 중심에 머물고 남는 것은 냉소와 피로, 반복되는 무기력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 규제’와 ‘시장 자율’ 사이를 오가며 갈등과 혼선을 되풀이해왔다.

제1의 길은 과도한 통제와 비효율에, 제2의 길은 방임과 책임 회피에 머물렀고 제도의 신뢰는 무너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처벌 중심의 대응은 생명과 안전 보장의 신뢰를 만들지 못했고 통제 일변도의 구조는 참여를 가로막았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 선언이 아니라 시스템, 대결이 아니라 공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1990년대 영국에서는 런던정경대(LSE)의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제3의 길’ 이론을 토니 블레어가 정치에 실현하며 공공성과 시장 효율성, 시민 참여를 결합한 실용주의 정치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토대를 다졌다. 핵심은 단순한 절충이 아닌 문제 해결 중심의 구조 전환이었다.

한국 사회에도 이제 이런 전환이 필요하다. 끝없는 정쟁과 진영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꾸는 정치가 요구된다. 그 출발점은 바로 ‘안전’이어야 한다. 생명과 일터의 안전은 특정 진영에 독점될 수 없는 공통의 책무이며 정치가 경쟁해야 할 대상은 상대편 진영이 아니라 더 나은 안전을 만드는 역량이다.

한국은 여전히 산재 사고로 매년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사고사망만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의 변화는 더디다. 과도한 처벌 중심 접근은 침묵을 낳고 예방보다 회피를 유도하는 왜곡된 구조를 고착시킨다.

이제는 참여 기반 안전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하며 그 중심에 ‘안전 외부감사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의 안전관리체계를 독립된 제3자가 점검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구조로 회계 외부감사와 유사하다. 위험성 평가, 안전 투자, 예방 활동까지 포함하며 정부가 인증한 민간기관이 감사하고 결과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유한다. 중대한 결함 시 시정과 이행 확인이 이뤄지고 성과에 따라 세제 혜택과 감독 면제 등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영국 안전보건청(Health and Safety Executive·HSE, 일본 안전성 평가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OSHA) 모델과 유사한 협치 거버넌스다.

산업안전 정책과 거버넌스의 전환, 왜 지금인가. 대선은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헌법에 ‘국민안전기본권’을 명시하고 안전투자세액공제, 안전 외부감사제도 등을 통해 안전정책의 패러다임을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과 공동 책임 분담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안전한 삶’을 말로만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이 현실이 되도록 국민과 함께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일이다. 더 강한 처벌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더 큰 정부가 아니라 더 넓은 참여로.

이번 대선에서는 안전한 나라로 가는 제3의 길이 한국 정치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기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 길목에 국민안전기본권, 안전투자세액공제, 그리고 안전 외부감사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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