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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역전승소’도 있지만…대형로펌과 고액소송서 10건 중 4건 패소

김미영 기자I 2025.03.18 05:00:00

[국세청 소송전]
“기획소송, ‘빙산의 일각’으로 시작…패하면 출혈 커”
‘조세회피’ 다국적기업과의 소송도 애먹어
지원 강화 절실한데…‘예산의 벽’에 막혀

[세종=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지난해 11월 말 국세청은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 6곳과 6년여간 벌여온 소송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소송가액이 970억원인 이 사건에서 국세청은 1, 2심을 내리 졌지만 대법원에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주요쟁점은 보험사가 부가가치세 대신에 부담하는 교육세(수입금액의 0.5%)의 과세표준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손보사들은 상해·질병 등으로 보험금을 지급해 소멸된 책임준비금은 과표에서 공제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대법원은 법률상 명시된 공제 항목으로 볼 수 없다며 국세청 손을 들어줬다.

국세청으로선 악전고투 끝에 얻어낸 역전승소다. 흔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100억원 넘는 고액소송에서의 승률이 6할대 수준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전문인력 등 자원부족난에 시달리는 국세청은 기획소송을 주도하는 대형로펌, 조세회피에 능한 다국적 기업 등과의 싸움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민간의 소송능력↑…과세당국 방어 급급”

법조계와 세무업계 등은 국세청과 손보사들의 법정 다툼을 두고 ‘대형로펌이 설계하고 부추긴 기획소송’이라고 평가한다. 만약 이 사건에서 국세청이 결국 패소했다면 수천억원대의 혈세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손보사 등의 줄소송이 잇따를 게 뻔한데다, 향후 납부세액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기획소송에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형로펌이 대대적인 인력과 재원을 투입해 현행법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생각지 못했던 쟁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로펌의 기획소송은 통상적이지 않은 쟁점을 들고 나와 적은 금액 소송부터 시작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로펌이 이기면 딸려오는 사건들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로펌으로선 기획소송에서 이기면 노다지를 찾는 것”이라며 “인력을 투입해 사건을 발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문제는 국세청의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해석이 불명확한 법 조항을 찾고, 과세당국에 대응할 새 논리를 개발하는 등 민간의 권리의식과 소송능력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민간의 대응논리는 강화되는데 과세당국의 방어가 따라가지 못해 국세행정이 눌려가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다국적 기업과의 소송도 만만찮다. 수조원의 매출을 거두고도 소액의 법인세를 내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 조세회피 성격이 강하지만, 국세청은 과세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자료 확보부터가 난항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탈세와 절세의 중간영역에 조세회피라는 회색지대가 있다”며 “다국적 기업, 대기업은 충분한 법률 자문 인력들의 용의주도한 설계로 과세를 피해 국세청이 소송에서 애를 먹는다”고 했다.

다국적 기업들도 소송에선 대형로펌을 앞세운다. 결국 금액이 큰 소송은 국세청과 대형로펌의 일전이 된다. 2023년 종결처리된 조세소송 1494건 중 6대로펌이 관여한 사건은 16%였는데, 이들 사건 소송금액은 전체 금액의 75%를 차지했다.

◇ “연봉 10배 많은 이들과 싸움…투자 늘려야”

국세청의 송무 역량 강화를 위해 최우선돼야 할 사안으로는 해석이 불명확하거나 미비한 법 조항을 정비하는 작업이 손꼽힌다. 대형로펌 등이 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촘촘한 법 체계를 우선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 개정 등이 단기에 진행되긴 어려운 상황으로, 국세청의 송무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인적 자원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단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로펌 등 사기업 직원과 국세청 공무원 간 급여 차이가 워낙 커서다. 우수 인력이 국세청에서 경험만 쌓고 나가거나, 아예 진입하지 않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형로펌 가면 연봉이 10배인데 공무원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매년 국세청의 불복환급액이 2조원 수준”이라며 “우수 변호인력을 확보하려면 우주항공청처럼 ‘연봉 상한 예외’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외부 대리인 선임에도 예산 제약이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외부 대리인에 442건을 맡기고 82억 5600만원을 수수료로 지급했다. 단순 계산하면 1건당 1800만원 수준으로 현재의 로펌 시세엔 한참 못 미친다. 국세청이 지난해 대리인 선임사건 10건 중 4건 이상(41.6%)에서 패소했다.

국세청은 “선례 없이 복잡하고 법리 다툼이 치열한 사건들을 맡기다 보니 패소율이 높게 나온 것”이라며 “예산 지침에 수수료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요사건이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승소 가능성이 높은 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우철 교수는 “조세소송 규모가 불어나는데도 정부가 국세청 송무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며 “내부에 고급 인력을 유치하고 여의치 않으면 아웃소싱을 해서라도 민간의 양적·질적 투입과 견줄 만한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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