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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대선 국면에 진입했다. 후보들은 하나같이 자유시장 경제를 외친다. 그러나 노동 문제에 이르면 하나같이 침묵하거나 단편적 구호에 머무른다. 주 52시간제 조정,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같은 부분적 논의에 그칠 뿐 노동시장 전반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그런 부분적 개편이 아니다. 노동시장 전면 대개혁, 그리고 다가올 미래 노동시장에 대비하는 선제적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진짜 국민을 위하는 길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대담하게 노동의 틀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대한민국은 노동시간은 길고 생산성은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 대비 70% 수준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경직된 노동법,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 해고 제한 규정 등이 혁신과 유연성을 질식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노동행정과 노동을 보는 사회적 시각, 그리고 국회의 정치지형까지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노동부는 ‘노동권 보호’에 치우쳐 기업 활동 지원이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사회적 시각 또한 ‘노동자=약자’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건강한 노동시장 개혁은 ‘반노동’으로 몰리기 일쑤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다. 특정 정파가 강성 노조 편향 정책을 밀어붙이며 합리적 노동개혁 논의를 정치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노동정책도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다.
노동개혁은 소수 기업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있어야 국민이 산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 없이는 외국 기업의 투자도 국내 기업의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세계 주요국은 이미 노동시장 유연화와 함께 미래 노동시장 변화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은 전통적 고용 시스템을 넘어 디지털·플랫폼·AI 시대를 대비하는 노동법과 사회보장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20세기형 노동법에 묶여 있다. 이대로라면 신산업은 클 수 없고 청년들은 미래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등으로 외국 이주가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의 일자리에는 새로운 풀이 절실하다.
이제는 단순한 ‘주 52시간제 보완’ 수준을 넘어 다음과 같은 노동시장 대개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성과와 기여 중심의 노동시장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연공서열 임금체계를 폐기하고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과 승진이 결정되는 구조를 정착해야 한다.
둘째, 해고 및 고용유연성의 합리적 보장이 필요하다. 합리적 경영상 해고를 명확히 허용하고 대신 사회안전망과 재취업 지원을 강화해 노동자의 이동성과 복귀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노사 갈등구조를 협력구조로 혁신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적 개입을 줄이고 노사 당사자 간 자율적 협상을 촉진하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는 개인노동의 자율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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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평생 직업교육 및 직업 전환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 발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직업교육 시스템을 정비해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의 시장에서도 노동자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규제 개선이 아니라 노동시장 그 자체를 새로 짜는 대개혁이다.
하지만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개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편향된 노동행정, 사회 인식, 정치지형부터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노동부의 역할을 노동권 보호에만 국한하지 말고 노동시장 유연성과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노동행정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둘째,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노동=약자’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노동과 기업, 시장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 모델을 강조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체계적 홍보와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정치지형의 균형을 복원해야 한다. 노조 편향 정책만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리셋 장치가 필요하며 노동시장 유연성, 혁신, 청년 고용을 중시하는 합리적 개혁 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제도와 문화의 전환 없이는 노동개혁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낡은 노동제도와 경직된 고용시장이 이들의 가능성을 억누르고 있다. 기업이 자유롭게 사람을 뽑고 사람도 자유롭게 기회를 찾아 이동할 수 있는 시장, 성과와 기여가 정당하게 평가받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노동시장.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진짜 국민을 위하는 길은 당장의 규제 완화나 생색내기가 아니라 노동의 틀 자체를 갈아엎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편향된 노동행정과 정치구조를 바로잡는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가오는 대선, 우리는 ‘표를 얻기 위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미래를 설계할 용기’를 지닌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짜 개혁이다. 진짜 국민을 위한, 진짜 미래를 위한 노동시장 대개혁이다. AI 시대다. AI 시대의 노동은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있다. 서두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