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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당초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대선 전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법조계에서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시각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지난달 22일 이 후보 사건을 배당하면서부터 대법원을 향한 의심을 눈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지난달 22일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로 사건을 하자마자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여기에 더해 당일 특별 전원합의기일까지 열어 사건에 대한 결론 도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지난달 24일 또다시 특별 전원합의기일을 진행했다.
대법원이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진행되는 정기 전원합의기일 외에 별도로 특별 기일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데, 여기에 더해 사흘 사이 두 차례 특별 기일을 연 것이다. 이 같은 초고속 진행은 전합 재판장이기도 한 조 대법원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특별 전합기일이던 지난달 24일 조 대법원장과 11인의 대법관들이 모여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라는 결론과 함께 5월 1일 선고 기일 지정을 결정했다. 대법원이 이 같은 선고기일 지정을 공지한 것은, 민주당의 최종 후보 선출된 지난달 27일의 이틀 후였다.
대법 소수의견 “성숙기간 안 거친 결론, 국민 납득하겠나”
이 후보 사건 판결 이후 공개된 대법원 판결문은 선고 시점을 두고 대법관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대법 전합 요체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에 있다. 설득과 숙고의 고정이 치열할수록 얻게 되는 보석은 더 찬란하며 견고하다. 설득과 숙고에는 어느 정도 시간의 지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대법관은 “대법원이 신속한 재판의 원칙을 내세워 유례없이 짧은 기간 내에 이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놓게 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당사자와 국민의 시선 속에 비치는 법원의 공정성, 심리의 충실성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어느 만큼인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의 성숙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이지만 결론에서도 당사자들과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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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절차 지연과 엇갈린 실체 판단으로 인한 혼란과 사법 불신의 강도가 유례없다는 인식 아래, 철저히 중립적이면서도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대다수 대법관 사이에 형성됐다”며 “대법원의 신속한 절차 진행 시도와 노력은 적시 처리가 필요한 유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여러 법원에도 뚜렷한 메시지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수 대법관 “빠른 처리로 유사 사건에 ‘빠른 처리’ 메시지 줘야”
이들 대법관들은 ‘졸속심리’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비교적 단순한 사건이기에 짧은 시일 내에 심리를 마무리하는 것 역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사건 주요 쟁점은 크게 복잡하지 않고, 1심과 2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사실 인정에 어려움이 있지 않다”며 “대법원으로서는 (1심과 2심 중)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충분한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이 이 후보에 대한 상고심 선고 기일을 공지하자, 조승래 수석대변인 명의로 “상식과 순리에 맞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는 짧은 논평을 냈다. 당내에선 유례없는 초고속 상고심 선고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 무죄 확정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판·검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통상적 상고심 사건을 고려할 때 원심의 판결을 파기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후보의 대선 승리 시 이미 기소된 재판의 진행 여부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털고 가는 것 아니겠냐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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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저녁 민주당이 ‘분풀이 탄핵’이라는 비판에도 기습적으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본회의 표결,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소추안 발의를 했던 것을 떠올리면 비교적 차분한 대응이었다.
‘참던’ 민주당, 파기환송 절차 속전속결에 ‘폭발’
하지만 이 같은 민주당의 입장은 초고속 파기환송 절차 진행까지 더해지며 급변했다. 대법원은 선고 하루 뒤인 지난 2일 사건 기록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민사소송법상 ‘2주 이내’로 돼 있는 송부 절차를 하루 만에 마무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서울고법은 이송 당일 사건을 곧바로 형사7부에 배당했고, 형사7부는 배당 당일 이 후보 사건의 첫 공판기일을 이번 달 15일로 지정했다. 기록 송부, 배당, 공판기일 지정까지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이뤄지자 민주당은 폭발했다. 유독 이 후보 사건에서만 이례적이거나 유례가 없는 절차 진행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정치 개입’이라는 주장이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법원에 의한 사법 쿠데타이자 대선 개입”이라고 성토했다. 조 수석대변인도 “윤석열의 부활을 노리는 내란 잔당의 기막힌 속도전”이라며 법원과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동일선상에 두기까지 했다.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은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으로 몰려가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처음으로 대법관들에 대한 탄핵 필요성을 언급했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대법원장에 대한 즉각적 탄핵소추 절차 돌입 방침을 밝혔다. 박찬대 대행은 소셜미디어에 이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할 수 없다. 이게 마지막이길…”이라고 밝히며, 당 차원의 탄핵 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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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장 “최고법원 판결 존중해야 법치주의 존재”
민주당은 4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조 대법원장 등을 포함한 대법관 탄핵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의총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대법관들이 실제 재판기록을 모두 봤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대법원 차원의 관련 로그 기록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의총에선 이에 대한 당 차원의 공식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선고 시점 그 자체에 대해선 법원 내부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는 “이례성은 결국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 “30여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는 공개 비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초유의 사법 수장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커지는 것에 대해선 법원 안팎은 큰 우려을 하고 있다. 한 지방법원 소속 법관은 “판결 내용 자체엔 동의하는 편이지만, 선고 시점에 대해선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렇지만 판결을 이유로 대법원장 탄핵을 시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민주당이 이성을 찾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 절차상으로 다투면 충분할 문제에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앞세워 탄핵이라는 칼을 들이밀고 있다”며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사법부 존중’을 언급하던 민주당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판결에 대한 비판, 비평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최고법원의 판결과 법관에 대한 존중 없이는 법치주의도 또 이를 뒷받침하는 헌법기관도 존재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사법쿠데타’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법부는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사법부가 해야 할 모든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사법쿠데타라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히틀러보다 더 하고 김정은도 이런 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실성이라도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