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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22일 이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와 회동에서 제도 개선에 공감의 뜻을 밝혀 개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개정안 핵심은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역량 검증은 공개로 분리하자는 것이 골자다. 도 넘은 인신공격과 먼지털기식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정책과 역량 중심의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취지는 십분 공감한다. 그런데 과거엔 왜 침묵했을까.
직전 윤석열 정부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내 과반 의석 이상을 원내 1당이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정부 인사에 대한 탄핵은 물론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을 국회에서 단독 처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현재 추진하는 인사청문제도 개선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오히려 인사청문 개정 방향을 자료제출 요구 권한 강화, 청문대상자 허위진술 시 처벌 조항 신설, 인사청문 대상자 확대 등 제도 강화에 중점을 뒀다. 실제로 민주당은 3년 전 한덕수 전 총리 후보자 청문회 당시 50년간 공직생활 봉급 내역, 사망한 부모의 부동산 거래내역 등 1000건이 넘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6·3 대선을 통해 여야의 공수가 바뀐 이후론 입장은 확 달라졌다. 민주당은 이젠 후보자의 청렴성·도덕적 문제 등 소모적인 정쟁은 최소화하고, 자질역량과 정책 검증을 위주로 하는 청문회 간소화를 주장하고 있다. 과거 야당 시절에 추진하면 일견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이젠 내로남불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힘은 총리 낙마에 사활을 걸며 국정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의석수에 밀려 임명 강행은 막을 수 없지만, 여론전을 통해 정부의 추가 인선에 부담을 주고 국회에서 일부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여당 시절엔 인사청문회가 직무수행 능력 검증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개정안을 냈다. 이제와서 소위 ‘김민석 방지법’을 발의하며 반격의 날을 바짝 세우고 있는 것을 두고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자승자박의 행태다. 국회나 정부 인력의 질은 떨어지고 피해는 국민들이 본다.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양당이 사활을 건 전국구 선거의 공천 과정이나 정부 인사 임명 관련 후일담을 들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재는 많은데 매번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추천을 받은 전문 인력들이 본인과 가족 주변을 먼지 털듯이 하고, 망신주기식 청문회를 거칠 바에야 차라리 민간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해 이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는 제대로 된 검증 기준을 세우지 않고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들쭉날쭉 선을 넘었던 국회도 한몫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기준이 아니라 명확한 원칙과 잣대를 다시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