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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피난민이 만든 성심당…‘빵’으로 전성기 맞은 비결은

노희준 기자I 2025.05.13 06:00:30

[동네빵집의 새역사 쓴 성심당]④
창업주의 '이익이 아닌 나눔' 경영 철학
화재로 공장 전소 BUT 엿새만에 복구..."위기 극복의 상징"
본연의 정체성 확립 후 제2의 전성기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1950년 겨울, 흥남부두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마지막 탈출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몸을 실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임길순 씨는 “이번에 살아날 수 있다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품었다. 그는 무사히 거제에 도착한 뒤 대전으로 향했다. 이 특별한 사연은 성심당이 공식적으로 밝힌 기업 연혁의 시작이다.

성심당에 따르면 임길순 창업주는 대흥동성당의 도움으로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대전역 앞에서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시작된 작은 빵집은 창업주의 신앙과 나눔의 다짐을 바탕으로 ‘이익이 아닌 나눔’이라는 경영 철학을 세웠다. 하루에 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는 이웃과 나누었고, 돈이 없는 이들도 빵을 맛볼 수 있도록 시식용 빵을 넉넉히 준비했다. 이 나눔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성심당을 관통하는 가치로 자리 잡았다.

성심당 본점 (사진=성심당)
1970년대 대전역에서 은행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성심당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세 임영진 대표가 경영을 맡은 1980년대는 첫 번째 부흥기였다. 임 대표는 직접 제빵 기술을 익혀 튀김소보로 등 혁신적인 메뉴를 개발했다. 단팥빵, 소보로, 도넛을 결합한 튀김소보로는 전국적인 히트상품이 됐고 포장빙수(1983년), 생크림케이크(1985년)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신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성심당은 대전의 자부심’이라는 슬로건이 이 시기 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대전 신도심 개발과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 가맹사업 실패 등으로 성심당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결정타는 2005년 설날을 앞두고 발생한 대형 화재였다. 3층 공장이 전소되며 폐점 위기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직원들은 “잿더미 속의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는 구호 아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구에 나섰다. 불과 엿새 만에 임시공장에서 다시 빵을 굽기 시작한 성심당은 위기 극복의 상징이 됐다.

이후 성심당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 같은 빵집’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1년 롯데백화점 입점, 2012년 대전역점 오픈 등 지점 확장과 함께 전국구 명성을 얻게 된다. 2013년 케익부띠끄 오픈, 2020년 모바일 쇼핑몰 론칭, 2023년 프리미엄 신제품 ‘딸기시루’ 출시 등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시작된 작은 빵집은 70년이 지난 지금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 ‘나눔과 사랑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심당의 역사는 한 사람의 신념과 공동체 정신이 어떻게 기업의 뿌리가 돼 세대를 이어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성심당 문화원 (사진=성심당)


성심당 연혁

1950년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피난

1956년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 창업 (창업주 故임길순. 故한순덕)

1970년 대전. 중구 은행동 153번지 이전 (現. 성심당 케익부띠끄)

1980년 1월 2代 경영 대표이사 임영진

1980년 5월 튀김소보로 개발

1983년 5월 포장빙수 개발,

1985년 3월 생크림케익 개발

1990년 5월 중구 은행동 145번지로 본점 이전

1995년 임영진 대표 동생 프랜차이즈 독립 선언

1999년 모두를 위한 경제 EoC 기업정신 도입

2001년 4월 로쏘 주식회사 법인 전환

2005년 9월 본점 화재 후 오픈

2011년 12월 롯데백화점 최초 입점

2012년 11월 대전역점 입점

2013년 12월 케익부띠끄 오픈(제빵과 제과 분리)

2017년 9월 DCC점 오픈 (대전컨벤션센터)

2020년 12월 성심당 모바일 쇼핑몰 오픈

(자료=성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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