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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야 좌파야?"…헌재 앞 식당 낙인 찍기, 사장님들 한숨만

정윤지 기자I 2025.03.23 13:27:49

식당 찾아가 욕설 퍼붓고 별점 테러까지
애꿎은 식당 직원에 “우파냐 좌파냐” 묻기도
“그런 말 한 적도 없는데”…답답한 점주들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 장기화의 불똥이 헌법재판소 앞 소상공인에게 튀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좌파 식당’과 ‘애국 식당’ 리스트가 공유되면서다. 명단에 오른 식당 점주들은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을 호소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한 지도에는 ‘탄핵에 동조하는 헌재 앞 식당’이라며 헌재 인근 식당의 좌표가 찍혀있다(왼쪽). 헌재 인근 한 음식점 리뷰에 음식과 관계 없는 글이 적혀있다. (사진=‘x’ 갈무리, ‘카카오맵’ 캡처)
23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인근의 9개 식당이 윤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는 이른바 ‘좌파 식당’ 목록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애국 음식점’ 목록으로는 헌재 인근 8개 식당이 지목됐다.

온라인상 사용자들은 좌파 식당이 헌재 앞 탄핵 반대 시위대를 비난했다거나 탄핵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불매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해당 가게 점주들은 그러한 사실이 없는데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찾아와 항의하고 전화로 대뜸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호소했다.

좌파 식당으로 지목된 한 헌재 인근 프랜차이즈 가게 점원은 “전화가 와서 욕을 하고 끊는 경우가 있었다”며 “탄핵에 찬성하는 게 맞느냐고 따지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한 적도 없고, 시위대를 향해 욕을 한 적도 없다는 이 점원은 “그냥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한다”며 체념한 듯 말했다.헌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식당 주인은 불매 리스트에 관해 묻자 “그런 게 있다는 걸 안다. 너무 상처를 받아서 말을 할 수가 없다”며 목이 메는 듯 울먹였다.

애국 식당으로 알려진 식당 점주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식 종류를 파는 한 점주 부부는 “애국 식당 리스트에 왜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는데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오면 ‘사장님 애국이냐 종북 좌파냐’고 묻더라”고 전했다. 부부는 이러한 관심이 식당 운영에 좋지도 않고 오히려 부담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정치적인 신념이랑 관계없이 어딘가에서 이런 걸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주인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다”며 “워낙 이 주변이 혼란스러워 단골이던 일반 손님들이 잘 안 찾아오니 매출에 영향이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도 이들 식당에 대한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식당 목록이 퍼진 지난 17일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별점 1점 리뷰만 여러 개가 찍히는 방식이다. 한 ‘좌파 식당’ 리스트에 오른 가게에는 “극우 같은 소리하네 극좌들아 너네 시선으로는 극우로 보이겠지”와 같은 음식과는 전혀 상관 없는 리뷰도 달려 있었다. 이에 맞서 별점 5점을 남긴 한 사용자는 해당 가게 리뷰에 “극우들 몰려와서 별점 테러해놨네”라고 대응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맞은 편 식당가 앞 인도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로 가득차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이 같은 좌표 찍기는 윤 대통령 탄핵 정국이 길어지며 심화하는 모양새다. 앞서 극우 커뮤니티에는 12·3 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이라고 적힌 배지를 착용하고 일하는 민주노총 마트노조 조합원의 개인 정보가 공유됐다. 이들은 해당 매당에 항의 전화를 하라고 서로 독려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노총 마트노조는 지난달 4일 경찰에 조합원을 협박하는 이들을 고발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식당이 밥그릇이 걸린 문젠데 예민한 상황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겠나”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거나 강요하는 게 폭력이고 전체주의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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