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대학생 진홍씨는 15일 오후 친구 2명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을 방문했다. 사옥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는 홍씨가 오기 전부터 관광객 22명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도 각국에서 온 팬들은 부채와 양산으로 땀을 식혔다. 진홍씨는 “토요일에 제이홉의 콘서트를 보고 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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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여파로 매일 같이 집회가 열리면서 한동안 얼어붙었던 용산 일대에 훈풍이 불고 있다. 아이돌그룹 BTS의 군 전역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불안한 정치상황이 정리되면서 소비심리도 회복되는 모양새다.
BTS가 이끈 변화는 거리 곳곳에서 엿보였다. 하이브 사옥 뒤편의 카페와 식당 5곳에는 팬클럽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가게의 직원들은 밀린 주문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팬들이 대여해 BTS 테마카페로 운영되는 매장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골목에서 만난 스페인 관광객 푸엔테스씨는 “제이홉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 왔다”며 “당연히 BTS가 여행을 온 첫 번째 이유이지만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곳이 정말 많다, 경복궁과 한복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지니씨는 “데뷔 1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온 것도 있지만 한국에는 외국인 팬들이 즐길 거리가 많다”고 했다.
상인들은 늘어난 관광객 덕분에 매출이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3년째 이 지역 카페에서 일한 다희씨는 “지난달과 비교할 때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며 “BTS뿐 아니라 다른 가수의 팬들이 공간을 빌려서 일일카페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의 카페에서 만난 조은지씨도 “회사원이 주로 다니는 동네라 점심시간 외에는 손님이 없는데 요즘 매출이 2배는 늘었다”고 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BTS 멤버들의 전역이 이뤄진 지난 10일과 11일 하이브 사옥에는 이들의 복귀를 기다린 팬 4000여명이 모였다. 당시에 각국 팬들은 자국 국기나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을 흔들며 방탄소년단의 복귀를 환영했다. 아울러 BTS의 데뷔 12주년을 맞아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2025 BTS 페스타’와 제이홉 콘서트에는 6만명과 5만 4000명이 각각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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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정치 집회로 소란스러웠던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도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한남초등학교 인근 골목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관련 확성기 구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육교와 인도 펜스마다 걸려 있던 집회 현수막도 모두 사라졌다. 집회 참가자들이 빽빽하게 있던 거리에는 주말 산책에 나선 주민들이 보였다.
한남동의 한 옷가게 직원 이모(24)씨는 “예전에는 집회 인파 때문에 5분이면 갈 거리가 20분씩 걸렸다”며 “아직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확실히 소음이 많이 줄었다. 오후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패션 브랜드 매장을 보기 위해 많이 온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변모(78)씨도 “확실히 사람들 표정이 밝아졌다”며 “요즘 저녁 모임을 갔다가 택시를 타는 승객이 좀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8로 4월(93.8)보다 8.0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10월(101.8)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로, 100선을 웃돌면서 비상계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들은 작금의 경제 활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면 전자여행허가제(K-ETA) 같은 여행시스템을 간편화해 외국인 관광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외국인들이 좋아할 문화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BTS 팬들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본 뒤 다른 지역에서 즐길 관광 콘텐츠가 부족하다”며 “지역의 관광 인프라와 콘텐츠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