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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아동학대를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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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I 2025.06.11 05:35:00

신작소설 ''아이들의 집'' 펴낸 정보라 작가
로봇·인공자궁 발달한 근미래 배경
아동살인사건으로 양육 의미 조명
''집''처럼 안전한 ''돌봄 사회'' 꿈꿔
여성·소수·약자 위한 정책 나오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여자는 물을 주었다. 시체는 바짝 마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벽 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벽장 문을 열었다. 크랭크 핸들을 돌렸다.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톱니바퀴가 다시 삐걱거렸다.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인형을 더 구해 와야 했다.” (소설 ‘아이들의 집’ 7쪽)

정보라 작가. (사진=혜영ⓒ Hyeyoung)
부커상, 전미도서상, 필립 K. 딕 상 등 유수의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49)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열림원)으로 돌아왔다. 사회적인 이슈를 SF(과학소설)·공포·판타지 등으로 담아온 정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아이의 양육과 돌봄이라는 주제를 미스터리 스릴러로 풀어냈다. 양육과 돌봄, 그리고 가정과 국가라는 책임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얽힌 인물들을 통해 ‘양육의 의미’를 되새긴다.

흥미 위주 아동학대 사건에 문제의식

정보라 작가 신작 소설 ‘아이들의 집’ 표지. (사진=열림원)
정 작가는 신간 출간을 맞아 이데일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이야기를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부터 ‘아이들의 집’이란 이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아동학대 사건이 흥미 위주로 보도되거나 양육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소설은 로봇 공학과 인공 자궁 연구가 발달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공공임대 주택에서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지고, 주거환경관리과 소속 조사관 ‘무정형’이 사건 이후 건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여기에 해외 입양인 ‘표’와 ‘관’이 자신들의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 의해 자신들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진실을 추적해가는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정 작가는 노동·여성·퀴어·생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서 이를 소설로 담아왔다. 그래서 정 작가에겐 ‘사회파 SF 작가’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아이들의 집’에서도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장애인 탈시설 활동가들의 고공농성 △영유아 해외 입양 문제 △형제복지원 사건 △아동학대 사망 사건 등을 언급했다. 정 작가는 “아동청소년 강제수용소의 문제, 해외 입양이라는 이름의 아동 인신매매 모두 국가적으로 용인된 체계적인 아동학대라는 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정보라 작가. (사진=ⓒ정혜란Hyeran Jung)
정 작가가 양육과 돌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 사회의 폐해가 있다. 그는 “보통의 인간이 자본주의 체제가 원하는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현재 한국 사회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놓아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 작가는 이번 신간을 통해 “모든 아이에게 언제나 갈 곳이 있는 사회, 언제나 지낼 집이 있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고 돌봐 주는 존재들이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 작가는 “한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착각 속에서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도 타인도 돌볼 여유가 없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노인은 빈곤하며 장애인은 수용시설에 갇혀 죽어가는 사회가 됐다”며 “좀 더 안전하고 평온한 사회를 상상하고 싶다”고 전했다.

해외 시상식서 故 변희수 하사 언급도

정보라 작가. (사진=ⓒ정혜란Hyeran Jung)
정 작가는 사회적인 이슈에서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으며 소설을 쓴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필립 K. 딕 상 시상식에선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 처분을 받았던 고(故) 변희수 하사의 실명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그녀를 만나다’의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성 소수자 탄압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올여름에는 번역 작업에 더 매진할 계획이다. 최근 폴란드 작가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소설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김영사)를 번역해 출간했다. 정 작가의 소설집 ‘저주토끼’를 영어로 번역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함께 올랐던 안톤 허의 소설 데뷔작 ‘영원을 향하여’도 번역을 마쳐 출간을 앞두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정 작가가 바라는 안전하고 평온한 사회는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여성과 소수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나중은 늦습니다. 고공의 노동자들이 땅에 내려올 수 있어야 합니다. 소수자와 약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나라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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