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7년째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태(변호사시험 5회) 변호사는 범죄피해자 상담 과정에서 이같은 질문들을 자주 듣는다. “법정에서 피해자가 앉을 자리조차 없는 우리 사법 현실에서 범죄피해자 보호를 헌법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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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가 지난 1월 펴낸 책 ‘범죄피해자와 헌법’의 표지에는 끈으로 발을 묶은 의자가 등장한다. 이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다.
그는 “책 표지에 등장하는 의자는 제가 변호했던 의뢰인의 경험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중증 장애인이었던 피해자는 와상 생활(질병·부상·노환 등으로 장기간 누워 지내는 것을 의미)을 하던 분이었는데 법정 출석을 해야 했다. 앉을 수가 없어 의자에 끈을 묶어 고정시켜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계속 흘러내리거나 넘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 변호사는 범죄피해자가 사법제도에서 마주하는 현실적 문제들에 주목하게 됐다. 특히 장애인 피해자가 사법체계를 마주했을 때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느꼈다고 한다. 현재는 해바라기센터를 통한 영상 증인 신문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여전히 사법접근성 측면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민사소송서 개인정보 노출…피해자 권리행사 걸림돌
박 변호사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은 것은 형사와 민사 절차 사이의 불균형이다. 그는 2018년 한 여성이 국민신문고에 입법 청원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판결문에 성명, 집 주소 등이 기재되는 문제였다.
형사소송에서는 피해자가 ‘가명’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는 실명과 주소가 그대로 노출되는 실정이다. 일부 민사소송법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에서는 가명으로 모든 기록이 처리되고, 심지어 배상명령도 가명 처리된다. 그러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려면 실명과 주소를 밝혀야 한다”며 “집행을 위해 주소 공개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보복 범죄의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지만 실명과 주소가 노출된다면, 누가 하고 싶겠나? ‘소장 넣었다가 가해자가 찾아와서 괴롭히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크다”며 이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권리 행사를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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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조항은 제27조 제5항의 재판절차진술권과 제30조의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이다. 박 변호사는 이 두 조항만으로는 피해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재판절차진술권은 피해자의 개별적, 집단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진술 시점과 방법에 한계가 있다”며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은 법적 성격이 불분명하고, 피해 회복에 충분하지 않다. 특히 재산상·정신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명문 규정이 없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헌법에 ‘국가의 범죄피해자 보호의무’를 국가목표조항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미래 활동에 대한 윤곽을 그려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목표조항’을 도입하면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기 때문에, 국가 정책 의제 설정 시 피해자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특히 아동학대와 노인학대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의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친권자가 아동학대 가해자로 구속되면, 아동 보호의 공백이 생긴다. 시설 보호는 한시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호 체계가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노인학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적 제도만으로는 충분한 보호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최근 증가하는 디지털 범죄와 2차 피해 문제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딥페이크, 인공지능(AI)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신종 성범죄 등 기존 법 조항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던 범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2차 피해를 어느 정도 선에서 규제하고 규율할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향후 개헌 논의시 ‘범죄피해자 보호’ 의제 다뤄야”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범죄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더 글로리’나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를 통해 범죄피해자가 숨죽이며 사는 현실이 간접적으로 보여지면서 인식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박 변호사는 평가했다.
그는 최근 탄핵 정국과 맞물려 고개를 들고 있는 개헌 논의에서 ‘범죄피해자 보호’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언젠가 개헌이 된다면, 범죄피해자 보호도 중요한 주제로 논의돼야 한다”며 “우리 모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범죄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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