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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윤석열식 노동개혁[노동TALK]

서대웅 기자I 2025.04.05 12:12:50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당선인 시절인 2022년 5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입니다.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 중 열 번째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행은커녕 노동을 적대시했습니다. 한국 사회 ‘최고 스피커’(윤 전 대통령)는 ‘건폭’(건설폭력배)을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진짜 폭력배가 아니라 건설 노조원들을 싸잡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급기야 최고 정책심의기구(국무회의)에서까지 그의 입에선 건폭이 나왔습니다.

‘노사 법치주의 확립’은 윤 정부 노동개혁의 첫 번째 과제(2023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가 됐습니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법을 따르라는 명분이었지만, 목적은 노동계 탄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조 회계 공시는 그 출발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노조 회계를 비조합원 시민들에게까지 공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돈 관리 제대로 안 하면 조직원들이 먼저 들고 일어섭니다. 노조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대형 노조라면 조직 내 반대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정부는 ‘노조가 회계를 엉망으로 관리한다’, ‘노조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10월 5일 보도자료 제목은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 시행’이었습니다. 이렇듯 정부는 정부가 나서야 할 만큼 노동계 문제가 크다는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생산해 냈습니다.

‘근로손실일수 감축’은 또 어떤가요. 정부가 내세운 노동개혁 제일 성과인 근로손실일수 감축은, 첫째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그 개념도 모호한 근로손실일수를 개혁 과제의 결과물로 가져온 점, 둘째 이를 노동개혁의 첫 번째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근로손실일수란 윤 정부식으로 쉽게 풀자면 ‘노동자가 일을 안 해 공장이 멈춘 일수’ 정도가 됩니다. 좀 더 직관적으론 쟁의(파업) 일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일수가 줄었다는 건 공장 가동일이 늘었다는 의미이므로 성과라는 겁니다.

그런데 근로손실일수엔 쟁의와 불법 쟁의에 따른 손실일수가 모두 담깁니다. 분명한 건 불법 쟁의 일수는 얼마 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엔 정치적 이슈로 불법 쟁의가 조금 있었지만, 평시의 대부분 쟁의는 합법적으로 이뤄진다. 불법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쟁의가 뭔가요. 출발부터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사용자에게 맞설 수 있게 한 헌법적 권리입니다. 헌법적 권리의 이용이 줄었다는 건 개혁의 성과가 될 수 없습니다. 쟁의가 늘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쟁의가 줄었다면 오히려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하는 게 정부 역할 아닐까요.

윤석열 정부는 막을 내렸습니다. 윤석열식 노동개혁은 사실상 지난해 12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민생 정책을 제외하면 윤 정부가 추진해 오던 대부분 정책은 당분간 멈춰 설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당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정책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노동자 적대 정책은 멈춰야 합니다. 시민 대부분은 노동자니까요.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윤 정부의 노동정책을 이렇게 총평했습니다. “일부 지지자한테 환영받았을지 몰라도, 정부 초기부터 노동을 적대시하며 대립적인 노정 관계가 이어졌고 국민 전체적으로도 지지를 잃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 역시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보였다. 급기야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는 “윤 정부는 다층화된 이중 노동구조를 완화하려는 노력보다 기업 경쟁력을 통한 낙수효과 등을 바라며 오히려 고착화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앞으로 부도나는 사업장, 구조조정에 나서는 사업장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노사 대립은 불가피하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부도 및 구조조정 사업장에 대해선 노사정과 지역이 힘을 합해 위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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