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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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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용익 기자I 2025.12.17 06:06:06
[이데일리 피용익 매크로에디터 겸 정치부장] 대학생 시절 자동차운전면허를 따자마자 부모님 차를 빌려 타고 나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심장이 빨리 뛰었다. 초보운전자에게 운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차선 하나를 바꾸는 데도 숨을 고르고,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번갈아 확인했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발끝에 온 신경이 쏠렸다. 짧은 거리를 주행했을 뿐인데도 집에 돌아오면 팔다리 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운전이 점점 쉬워졌다. 핸들은 손에 익었고, 시선은 멀리까지 나갔다. 반경도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던 내가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고, 고속도로를 타고 여자친구 집에도 갔다. 낯설던 도로는 익숙해졌고, 주행 속도도 빨라졌다. 쌩쌩 달리다 보면 도로 위에 나만큼 운전을 잘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신감이 자리를 잡았다.

그 즈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운전에 자신감이 생겼을 때 사고가 나기 쉽다”라고.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런 말이 들릴 리 없었다. ‘뭐래. 난 운전 잘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아침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접촉사고를 냈다. 서로 눈에 띄는 피해가 없어서 사과만 하고 끝났지만, 그 계기로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긴장할 때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는 자신감이 생긴 순간에 일어났다. 익숙한 길, 익숙한 시간, 익숙한 상황. 위험은 늘 낯선 곳이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잘한다고 믿는 순간에 닥쳤다. 속도를 내는 일보다 속도를 줄이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권력도 다르지 않다. 처음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권력자는 대체로 조심스럽다. 말 한마디, 결정 하나에 신중해진다. 주변을 살피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인다. 절충하는 것을 약함으로 여기지 않는다.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성과가 쌓이고 박수 소리가 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판단은 빨라지고, 질문은 줄어든다. ‘이 정도면 잘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권력자는 성공을 통해 방심하게 된다. 한두 번의 옳은 판단은 스스로를 검증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들고, 그 착각은 제동장치를 무디게 한다. 브레이크는 점점 늦게 밟히고, 가속 페달은 더 쉽게 눌린다. 주변의 경고음은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기에 몰렸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간다고 느낄 때다. 긴장이 풀리고 경계심이 사라질수록 판단의 오차는 커진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일부러 속도를 늦출 줄 아는 절제다.

운전을 하든 권력을 행사하든 자신감은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도하면 교만에 빠지고 거만해진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브레이크를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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