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대법관 100명 증원안과 김용민 의원의 30명 증원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논의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 측은 “대법관 1인당 연간 3139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중한 업무 부담을 완화하고 상고심 재판의 질을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4일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재판의 지연 실태와 신속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재판 지연의 핵심은 하급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하급심의 미결 사건은 36만여건으로 대법원 상고심 사건(2만1000여건)보다 17배 많으며, 민사 1심 사건의 17.4%가 1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사 본안 1심 합의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13년 245.3일에서 2022년 420.1일로 대폭 증가했고, 2년 6개월을 초과해 심리 중인 민사 본안 1심 사건은 2016년 2142건에서 2022년 7744건으로 3.6배 이상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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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국회에서 “대법관만 증원하면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욱 늦어질 것”이라며 “대법관이 30명이나 100명으로 대폭 늘어날 경우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형해화·마비돼 법령해석 통일 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대법관 증원 추진의 배경에 특정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대법관 증원 및 탄핵 추진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코드 인사’를 통한 사법부 장악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하급심 법관 증원에 대해서는 법조계 내부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대한변협은 전날 성명을 통해 “대법관 증원은 시급한 과제”라며 “대법관 수를 늘려 심리 부담을 분산하면 법리와 논증이 더욱 심도 있게 발전할 수 있어 국민의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가 두텁게 보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018년 대한변호사협회 설문조사에서도 변호사들은 판사 증원에 대해 94%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인 바 있다. 대법관 증원에 대한 찬성률도 78%로 높은 수치를 보였지만 하급심 판사 증원 찬성률보다는 낮았다.
지난해 12월 하급심 법관 370명을 5년간 단계적으로 증원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상고허가제 도입 등 종합적 사법개혁이 병행돼야 재판 지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상고허가제나 상고심사제 등 상고제도 개선과 함께 변론준비절차 내실화, 증거개시제도 도입 검토, 인공지능(AI) 활용 확대, 법관 전문화 및 인사제도 개선 등 다각적인 사법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철저한 상고허가제를 운영해 연간 접수되는 8000여건의 사건 중 실제 본안 심리를 하는 사건은 100건 내외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대한변협은 상고허가제나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방안에 대해서는 “사건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거나 관료적 계층을 신설하는 방안은 대법원의 기능을 왜곡하고 전관예우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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