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만약 이 직불합의를 체결한 이후, 하수급인이 발주자에게 대금을 청구하기 전에 원수급인의 다른 채권자들이 공사대금을 압류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하수급인은 자신의 공사대금을 지킬 수 있을까? 오랫동안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며 논란이 되어 온 이 문제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판결(대법원 2021다273592 판결)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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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심과 2심 법원은 원수급인 채권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직불합의가 있었더라도, 하수급인이 실제로 발주자에게 ‘직접 지급을 요청’하기 전에 이루어진 압류는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직불합의는 일종의 약속일 뿐, 하수급인이 지급 요청이라는 구체적인 권리 행사를 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판단에 따르면 하수급인은 직불합의서에 서명하고도, 대금 청구 전까지는 언제든 원수급인의 채권자에게 돈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직불합의의 법적 효력에 대한 명확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핵심은 직불합의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대법원은 발주자, 원수급인, 하수급인 3자가 직불에 합의한 ‘즉시’ 하수급인의 발주자에 대한 직접지급청구권이 발생한다고 판시했다.
더 나아가, 이 합의와 동시에 그 범위 내에서 △원수급인의 발주자에 대한 공사대금 채권은 하수급인에게 ‘이전’되고 △발주자의 원수급인에 대한 대금지급채무는 ‘소멸’한다고 보았다. 즉, 직불합의서에 3자가 서명한 순간, 해당 공사대금은 법적으로 더 이상 원수급인의 재산이 아니라 하수급인의 재산이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2019년 4월 19일에 직불합의가 체결된 이상, 그 이후인 5월 2일부터 들어온 원수급인 채권자들의 압류는 ‘이미 주인이 바뀐 채권’, 즉 존재하지 않는 채권에 대한 압류이므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건설 하도급 거래의 오랜 관행과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하수급업체의 지위를 획기적으로 강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직불합의는 단순한 대금지급 ‘요청권’을 보장하는 수준을 넘어, 합의 즉시 ‘채권 자체를 이전’시키는 강력한 법적 장치임이 명확해졌다.
이로써 하수급인들은 원수급인의 재정 상태와 무관하게 자신의 땀의 대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튼튼한 방패를 얻게 되었다. 발주자 역시 대금을 누구에게 지급해야 할지 혼란을 겪을 필요 없이 직불합의에 따라 하수급인에게 지급하면 면책된다는 점이 분명해져 법적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
결국 대법원은 하수급인을 보호하고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를 확립하려는 건설산업기본법과 하도급법의 입법 취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건설 현장에서 3자간 직불합의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성실하게 일한 하수급인들이 부당하게 눈물 흘리는 일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