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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에 담긴 철학…다름을 이해하는 술[1등의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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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준 기자I 2025.05.24 10:00:00

유학시절 다양한 수제 맥주 vs 생맥주 2000cc
문화적 차이와 다양한 입맛, 취향 존중 문화 대변
2014년 주세법 개정...이태원 펍 문화 확산 힘입어
코로나19 브루어리 직격탄, 편의점 수제맥주 급성장
대중 겨냥 대규모 생산 vs 소규모 개성, 다양성

“K푸드 어벤저스가 모였다.”

세계로 뻗어가고 세계가 주목하는 K푸드 탑티어 회사들이 직접 K푸드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드립니다. 매번 먹는 거라 익숙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우리 식품의 깊고 진한 맛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김치(대상)-만두(CJ제일제당)-유산균(hy)-빵(SPC그룹)-제과(롯데웰푸드)-아이스크림(빙그레)-맥주(OB맥주)-두부(풀무원) 등 각 분야의 1등 회사가 이름을 내걸고 매주 토요일 [1등의맛]을 배달합니다. <편집자주>⑦


[오비맥주 이천공장 크래프트 양조 슈퍼바이저 김준규] 부모님, 친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술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유학 시절, 교수님과 학생 10명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모두 각기 다른 수제맥주를 주문하는 모습에 놀랐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사장님, 여기 생맥주 2,000cc 주세요”가 더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제맥주는 문화적 차이를 상징하는 동시에, 다양한 입맛과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를 대변한다.

(사진=OB맥주)
국내 수제맥주 산업은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청년 창업과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한 펍(pub) 문화 확산에 힘입어 성장했다. 오비맥주도 양조기술연구소와 이천공장 수제맥주 전문 설비를 기반으로, 수제맥주와 관련한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춘 ‘이천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운영하고 있다. 수십 년간 쌓아온 품질관리 시스템과 공정 노하우가 더해져 ‘믿을 수 있는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다. 나아가 대표 브랜드 ‘카스’ 외에도 수제맥주 브랜드 ‘구스아일랜드’, ‘더 핸드앤몰트 브루잉 컴퍼니’를 인수해 함께 운영 중이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한정판 수제 맥주 개발에도 힘쓰며, 좋은 맥주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매장 중심이었던 브루어리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위탁 생산(OEM)한 캔 형태의 편의점 수제맥주들은 급성장했다. 형형색색의 디자인과 콜라보레이션 수제맥주들이 주목받았고, 소비자는 그 ‘신선함’에 반응했다. 그러나 본질보다 마케팅이 앞서면서, 일부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외면받았다.

반면, 미국은 1980년대 홈브루잉이 합법화된 이후 지역 기반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9천 개가 넘는 브루어리는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맥주로 소비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수제맥주를 ‘특별한 개성과 디자인이 담긴 술’이 아니라 ‘내 취향에 맞는 맥주’로 인식하는 흐름으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IPA, 사워, 밀맥주 등은 이름부터 생소하고 맛도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거 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곧 미각이 주는 감각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수제맥주는 단순한 음용을 넘어, 개인의 취향을 탐색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이는 최근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른 ‘옴니보어’와도 맞닿아 있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나이, 성별, 계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수제맥주는 재조명받고 있다.

(사진=OB맥주)
맥주는 겉보기에는 만들기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좋은 맥주를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와 홉은 모두 자연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언제나 일관된 맛을 기대하고, 제조자는 그 기대를 매번 충족시켜야 한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도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교한 품질관리, 안정적인 공정관리, 철저한 원료 선별이 필수다. 이는 대규모 생산이든 소규모 수제맥주든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이고, 오비맥주는 이를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에서 대규모 생산하는 라거 맥주는 상쾌함과 음식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완성도 높은 대중성’을 지향한다. 이는 규모의 경제, 기술력, 위생 관리, 품질 통제 등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반면, 수제맥주는 효율보다는 개성, 동일함보다는 다양성을 중시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맥주 산업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넓은 대중을 겨냥한 정제된 완성도를, 다른 하나는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창의성을 상징한다.

브루마스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맥주에 이야기를 담는 일’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아카시아 꿀은 맥주의 본래 향을 가리고, 가열 과정에서 섬세한 풍미와 프로폴리스 성분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경북 구미에 있는 해발 400m의 산속에 다양한 나무가 자생하고 꿀벌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고지대 양봉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수소문해 찾아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양봉가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고, 꿀의 일부만 샘플로 받아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 만들어진 맥주는 단순히 꿀이 들어간 맥주가 아니라, 산속에서 피어난 헛개나무, 진달래, 토종밤나무, 칡꽃 나무들의 꽃 향과 홉의 풍미가 어우러진 맥주였다. 이때 맺어진 양봉가 선생님과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수제맥주는 단순한 맛의 실험을 넘어 지역, 사람, 자연과의 협업이다. 그 맥주 한 병에는 한 시기, 한 사람, 한 풍경이 녹아져 있다. 이런 ‘맥주에 담긴 스토리’는 정체성과 차별화된 가치를 만든다.

수제맥주는 이제 더 이상 ‘특이한 술’이 아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취향은 왜 다른지를 배우게 해주는 지적(知)이며 미(美/味)의 대화 도구이다. 우리 지역의 재료와 방식, 세계의 문화와 지혜가 섞이고 통섭 되며 우리를 자극하는 ‘액체로 된 책’, 그것이 수제맥주다.

수제맥주는 다름을 이해하는 술이다.

그리고 수제맥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크게 환호할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오비맥주 이천공장 크래프트 양조 슈퍼바이저 김준규 (사진=OB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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