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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논의가 국제 기준과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며 소모적 논쟁만 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계는 이른바 ‘하향식’ 업종별 구분 적용을 요구합니다.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 인건비를 지급할 여력이 떨어지는 일부 업종에 대해선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겁니다.
이는 경영계가 평소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노사정으로 이뤄진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할 땐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게 설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죠. ILO는 ‘최저임금 정책 가이드’(Minimum Wage Policy Guide)를 통해 ‘더 높은 지급 능력’(higher capacity to pay)을 가진 산업에서 더 높은 임금 하한을 설정할 수 있다고 지침을 제시합니다. 구분 적용을 할 거라면 ‘상향식’으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현재 ILO 의장국입니다.
주요 선진국들도 업종별로 구분하는 경우 상향식으로 적용합니다. 최저임금위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등의 최저임금 제도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 26개국 가운데 업종별로 구분 적용 중인 나라는 독일·벨기에·스위스·아일랜드·일본·호주 등 6개국이며 모두 ILO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ILO가 업종별로 구분 적용을 할 거라면 상향식으로 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저임금에 담긴 ‘규범’적 요소 때문일 겁니다. 최저임금은 ‘가격’인 동시에 국가가 정한 하한이라는 사회 규범이기도 하죠. 어느 업종에서 일하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 땅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노동자라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게 최저임금에 담긴 규범적 요소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 때마다 하향식으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심의합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의 한 사용자 위원은 하향식으로 구분한 뒤 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국가 최저임금은 더 높은 기준이 되니 상향식이나 다름없다고까지 했습니다. 궤변이죠.
여기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지난해 일부 업종에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불을 지폈습니다. 노동법학자는 물론 노동경제학자들도 최저임금 제도 배경을 알지 못하고 작성한, 몰지각한 보고서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은 이러한 소모적 논쟁을 방치했습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둘러싼 논쟁은 친노동이냐 반노동이냐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냐 비상식이냐, 국제적 기준을 따라가느냐 반대로 가느냐 문제입니다. 올해부터라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