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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 미술평론가] 사진만 넣으면 지브리풍이든 디즈니풍이든 뚝딱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시대다. 누구라도 프롬프트 몇 줄만 칠 수 있다면 단박에 렘브란트처럼 다빈치처럼 혹은 미켈란젤로처럼 그려진 그림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시대에도 과연 화가에게 ‘잘 그리는 기술’이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기대도 있다. 화가라면 적어도 나보다는 잘 그렸으면 좋겠다는 것. 이 기대를 완벽히 채워주는 ‘화가’가 있다. 이석주(73)다. 극도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온 지 50여 년이다. 이보다 잘 그릴 수 있는 자 어디 손 한번 들어보라 하면 (AI는 모르겠지만) 누구라도 머뭇거릴 거다. 그만큼 솜씨가 기가 막히다.
그중 하나 ‘일상’(1985)을 가만히 보면 그냥 ‘잘 그렸네’ 하고 지나치기에는 여운이 짙다. 어딘지 아련하고 상당히 감성적이다. 약간 빛바랜 듯한 색감과 흐릿한 가장자리가 작품에 서정성을 더한다. 궁금하기도 하다. 저들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혹시 헤어지는 중인지. 이석주는 남녀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그렸다지만 정답은 없다. 관람자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뒷모습을 그린 덕분에 다양한 해석에 대한 여지가 더욱 커졌다.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면 놓치기 쉬운 다양한 ‘이야기’의 공간이다.
극사실주의적 표현 이면에 놓인 이야기 공간
이석주를 ‘한국의 극사실주의 1세대’라고 부르게 된 시리즈 ‘벽’(1977)도 마찬가지다. 사실적인 표현 방식에 일차적으로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작품의 진짜 의미는 스토리에 있다. 이석주는 미대 졸업을 앞두고 화면 가득 벽돌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꽉 막힌 벽을 보는 것 같이 답답해서였단다. 당장 뭘 먹고사나 싶은 막막함이었다. 그림쟁이는 장가도 못 간다고 했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겠나. 아니 누군들 없을까. 막힌 벽 앞에 선 것 같은 순간이. 이 역시 사실적인 표현 방식만 보고 지나치면 놓칠 수밖에 없는 공감 포인트다.
물론 극사실의 표현 방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그런 표현 방식은 미술사적 의미도 깊다. 이석주처럼 사실적으로 현실을 그린 그림은 1970∼1980년대의 한국화단에서는 꽤 신선한 것이었다. 그를 지도하던 홍익대 교수들의 작품은 ‘단색화’라고 불리는 추상화 일색이었다. 구체적인 형상 없이 희끗한 화면에 얇은 선들이 희미하게 지나간다거나, 누런 캔버스천에 암갈색 굵은 면이 턱턱 올라 있다거나 하는 평면회화가 대세였다. 그 화면 위로는 노자니 장자니 하는 철학이 덧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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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학교 밖에서는 민중미술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1980년대를 강타한,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리는 구상회화였다. 민주화운동과 호흡을 같이했던 민중미술과 이석주의 회화는 현실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의 그림은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이나 청년의 절망스러운 마음을 그림을 통해 표출했지만 이석주의 회화는 다른 이를, 또는 사회를 비난하는 법이 없다. 이런 점에서 ‘1980년대의 한국’이라는 시공간, ‘구상미술’이라는 장르를 민중미술과 공유만 할 뿐 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이석주의 회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양대 조류를 모두 비켜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줄곧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정 그룹에 속하지 않은 소외감이었다. 유독 편 나누기를 좋아하고, 그룹 짓기를 잘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거기에 화가라는 직업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으로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졌다. 모두가 산업전선에 뛰어들 때 주변 어딘가를 서성이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래선지 이석주의 작품에는 한 화면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그리 친밀해 보이지 않는다. 함께 있어도 늘 심리적인 간격이 느껴진다. 화가 자신이 느끼던 소외감이 작품에 반영돼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회화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렸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보는 것이 진짜 용기”라며 그는 이렇게 ‘밖’을 그리면서도 자신의 ‘안’을 부지런히 살펴왔다.
1990년을 전후해서는 화면에 시계, 말, 기차, 명화, 낡은 책 같은 사물이 등장했다. 이 모두는 시간에 대한 상징이다. 커다란 시계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나타내며, 말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우리 삶을 말한다. 기차 역시 쏜살같이 지나는 시간을, 명화와 낡은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존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벽을 보며 암담해하던 젊은 화가는 중년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괘종시계가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을 알려주는 아래, 마른 포플러 나뭇잎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아직 풀지 못한 관계 같은 전깃줄이 엉켜 있는 그 공간을(‘일상-상황’ 1996).
AI그림과 다른 건…작가가 살아낸 밀도 있는 ‘시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때론 야속하고 때론 두려울 때도 있지만, 이석주는 시간이 유한하기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영원하다면 그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반대도 마찬가지일 터. 고통스러운 시간도 유한하니 견딜 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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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계 때문에 골치가 아플 수도, 벽을 마주한 것이 암담할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너무 바빠서, 또는 매일이 똑같아서 지쳤을 수도. 만일 그렇다면 이석주의 작품 안으로 초대한다. 넉넉한 공간에 잠시 머물며 ‘시간이 유한하니 힘을 내라’는 위로를, ‘때를 아껴 삶의 순간을 만끽하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온 삶을 바쳐 만든 작품이 전하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격려. 기가 막히게 잘 그릴지언정 인공지능은 절대 할 수 없는 화가의 영역이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려 했다는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일찌감치 작가의 길은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이후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 가을·겨울’(2025 출간 예정), ‘꽃피는 미술관: 봄·여름’(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