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정법원이 최근 ‘졸혼계약’에 대한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부부 간에 ‘서로 누구를 만나든 간섭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졸혼계약은 정조의무를 배제해 혼인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선량한 풍속에 위배돼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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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정법원 김정익 부장판사는 최근 원고 A씨가 아내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1984년에 결혼한 A씨와 B씨는 약 39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으며 두 명의 성년 자녀를 두고 있다. 부부는 직업상 이유로 주말부부로 지내왔으나, 2018년 2월 A씨는 “졸혼하기로 합의하며 피차 누구를 만나든지 전혀 간섭·방해하지 않는다. 둘째 딸의 결혼 후에 이혼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졸혼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 작성 후 A씨는 다른 여성과 교제하며 불륜관계를 맺었고 2019년 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하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 A씨는 B씨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거부당하자 지난해 1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졸혼계약, 법적 구속력 없어”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졸혼계약서의 내용에 관해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서 작성 이후에도 부부가 자녀 및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행사를 함께 하는 등 원만한 혼인관계를 유지했으며, 둘째 딸의 결혼 이후에도 이혼에 관한 협의나 계약서 공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더 나아가 “설령 졸혼계약서의 기재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률혼 관계에 있는 부부 사이에 정조의무를 배제해 헌법상 보장된 혼인의 본질적 부분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선량한 풍속에 위배돼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중혼적 관계 허용하는 졸혼계약은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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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또한 혼인관계가 파탄된 것으로 보더라도 그 주된 책임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혼인 및 가족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시각에서 이혼만을 고집하며 스스로 혼인관계의 파탄을 결정지어버린 원고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졸혼이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혼인의 본질적 의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조의무를 배제하는 내용의 계약은 혼인제도의 기본 가치에 반한다는 법원의 판단은 변화하는 부부관계의 형태 속에서도 혼인의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