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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 전문기업 애경산업(018250)도 매각 수순에 들어갔다. 애경그룹은 주관사 삼정KPMG를 통해 최근 예비입찰을 마쳤으며, 총 10여 곳의 전략적·재무적 투자자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경산업은 색조 브랜드 ‘루나’와 생활용품 ‘케라시스’ 등을 보유한 중견기업이다. 애경그룹은 이번 매각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유동성 확보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위메프와 티몬은 수차례 매각을 시도해왔으며 티몬은 최근 오아시스 인수 방식의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강제 인가되며 인수 절차가 가까스로 확정됐다. 얖으로 티몬은 오아시스 품에서 회생 절차를 마무리하고 경영 정상화에 나설 전망이다. 위메프는 수년째 누적적자에 시달리며 대내외 매각설이 반복되고 있다. 명품 플랫폼 발란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M&A를 추진 중이다. 과열된 플랫폼 경쟁과 낮은 진입장벽 속에서 기업가치 방어에 실패해 벼랑 끝에 몰렸다는 평가다.
이처럼 유통과 이커머스를 가리지 않고 매물이 쏟아지는 배경으론 ‘경영 효율화’, ‘성장동력 확보’ 같은 명분이 내세워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동성 위기와 지속 불가능한 재무구조에 몰려 매각이 ‘최후의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대규모 적자 누적 등으로 계속 기업으로의 경쟁력이 낮아 M&A가 무산될 경우 청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정작 시장은 이런 매각 시도에 좀처럼 응답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매물 대부분이 브랜드 파워나 시장 지배력이 약해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객 충성도나 기술 경쟁력이 뚜렷한 경우에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런 조건을 갖춘 매물이 드물다. 여기에 인수 여력을 가진 대형 유통사들도 내부 구조조정과 점포 리뉴얼에 집중하느라 투자여력이 부족하고 이커머스 기업들 역시 수익성 리스크를 의식해 외부 플랫폼 인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투자 시장에서도 유통업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꺾인 상태다. 고금리·고물가 속에서도 수익 전환이 불투명한 유통 플랫폼은 출혈 경쟁까지 반복되며 투자 매력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배송 인프라, 물류센터, 광고·마케팅 등 고정비 비중이 높은 구조도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당분간 빅딜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 붐이 일시 위기가 아닌, 유통 산업의 구조적 재편 과정으로 분석한다. 오프라인 대형마트부터 온라인 플랫폼까지, 기존 모델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약한 업체들이 ‘1차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일부 대형 거래의 무산이 이어지고 법정관리 장기화가 겹칠 경우 구조조정을 넘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유통업 매각 러시는 일시적인 자금난이나 경기 요인보다는 수익 구조가 검증되지 않은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탈락하는 구조적 전환 흐름”이라며 “기업 가치가 사실상 소멸한 플랫폼도 적지 않고, 살아남는 곳만 살아남는 양극화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누가 먼저 무너질 것인가’를 가리는 사실상 생존 경쟁 국면에 가깝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