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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엠피닥터,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2.07까지 급락했다. 장중 한때는 101.27까지 밀리며 전 거래일 대비 2%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급락의 결정적 원인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 정책이다. 고율의 관세 부과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성장세를 크게 꺾을 것이란 불안이 반영됐다. 자유무역 시대를 거부하고 강력한 보호주의를 택한 트럼프의 탈세계화 정책에 시장은 빠르게 ‘달러 약세’ 쪽에 베팅하고 있다.
아문디의 채권 및 환율 전략 책임자인 파레시 우파디야야는 “달러 약세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그 기세는 매우 거세다”며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달러는 강세 흐름을 보였다. 트럼프의 감세와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며 달러 강세를 이끌 것이란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여러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정책은 강달러 기조와 완전히 일치한다”며 정부의 강달러 의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2월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광범위한 관세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달러 가치 역시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JP모건은 상호관세 정책이 올해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을 1.5%포인트 끌어올리는 반면, 개인소득과 소비 지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효과만으로도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무라증권은 상호관세와 기본관세의 영향으로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고,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 지표인 근원 PCE 물가는 4.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바클레이즈는 한층 더 비관적인 시각을 내놨다. 올해 미국 GDP가 0.1% 역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은 3.7%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UBS의 조너선 핑글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큰 폭의 정책 조정은 미국 경기 확장세에 실질적인 하방 위험을 안긴다”며 “인플레이션은 2026년까지 오르고, GDP는 줄고, 실업률은 상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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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최대 4차례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Group)의 페드워치(FedWatch) 툴에 따르면 이날 장 마감 기준 오는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99.1%로 나타났다. 7월에도 연이어 25bp 인하할 가능성은 73.5%, 9월 인하 가능성은 54.19%, 12월 추가 인하 가능성은 70.5%를 기록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경기를 위축시킬수록 연준이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진 것이다. 이날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한때 4%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해펠은 투자자 노트에서 “올해 연준은 최대 4차례 금리를 내려야 할 것”이라며 “현재 연준은 2차례 인하를 예상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선 보다 공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연준 입장에서는 간신히 잡아놓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물가가 연준 목표치인 2%에서 크게 벗어나 3% 후반~4% 수준까지 오른다면, 금리 인하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모건스탠리는 6월 금리 인하 전망을 철회했다. 모건스탠리는 “상호관세가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르면서 연준은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PCE 물가가 4%대에 머문다면, 연준이 올해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다만 내년에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다면 물가는 빠르게 꺾이고, 연준은 최대 200bp까지 금리를 내릴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 이사들도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리사 쿡 연준 이사는 이날 한 행사에서 “인플레이션은 상승, 성장은 하락 쪽으로 위험이 기울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고용시장 모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현 정책금리를 유지한 채 경제 전망을 계속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