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자동차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산 수출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EU는 향후 3년간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어치를 구매하고, 미국 내 투자도 6000억달러 이상 늘리기로 합의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5% 관세는 결코 낮지 않지만, 더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감내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2일 일명 ‘해방의 날’을 선언하고 교역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추진해왔는데 실질적인 성과가 없어 관세 부과 시점을 두 차례 연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미 증시에선 ‘타코(TACO·트럼프는 언제나 겁을 먹고 물러선다)’라는 조롱 섞인 유행어까지 생겼다.
뉴욕타임스는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 등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해왔고 여기에 협상력 부족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며 “이번 EU와의 합의로 이 같은 비판을 일정 부분 잠재울 수 있을 전망이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괴롭혀온 제프리 엡스타인 수사 파일 공개 논란에서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2019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수감 중 사망한 엡스타인과의 과거 친분에 대한 의혹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악재로 부상했다.
실제 무역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엡스타인 뉴스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서둘러 협상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짜증 섞인 어조로 “농담하는 것이냐,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당시 엡스타인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최근 관련 자료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일부에선 파일 공개를 번복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여론에 동조하면서 여름 휴회 이후 엡스타인 수사 파일 공개 여부가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EU와 15%의 상호 관세 부과, 미국산 에너지 및 투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무역 합의를 이끌어내며 분위기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무역협상이 후폭풍을 불러 올 수 있다고도 뉴욕타임스는 경고했다. 최근 체결된 협정들은 대부분 간단한 주요 수치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기존 포괄적 협정과는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 무역 정책 애널리스트 앤드루 헤일은 “합의문이 공개되고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성급한 해석은 금물”이라며 “이 같은 방식은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부과 권한을 문제 삼은 소송이 10여 건 진행 중으로, 이들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모든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