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관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경우 이미 미국 시장 확대를 고려해 현지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등 미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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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 3개 기업이 ‘스타게이트’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AI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초기 투자액은 1000억달러(약 143조원)이고, 4년간 최대 5000억달러(약 718조원)까지 투자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해 AI 기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인데, 국내 메모리 업체에는 고용량·고성능 메모리 칩에 대한 수요처가 늘어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특히 AI가속기에 필수적인 HBM뿐 아니라 DDR5 등 데이터 센터를 위한 고부가 반도체 수요처가 늘어날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에서 AI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버와 관련된 소재, 부품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우리 기업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HBM이 주로 쓰이지만, 트럼프가 구상하는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가 꼭 메인은 아니”라며 “HBM이 전체 시스템에 들어가면서도 DDR5 등 다른 종류의 메모리도 다 필요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특히 최근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레거시 D램 공급 물량을 확대하면서 D램 가격이 약세를 기록 중인데, 여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HBM 등 메모리 생산이 확대되면 D램 공급 물량 역시 줄어들게 되고 D램 가격 안정화도 이어질 수 있다. 김 전문연구원은 “레거시 D램은 중국과 경쟁할 분야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공정 전환을 해야 할 분야”라며 “이에 따라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 레거시 D램 단가가 떨어지더라도 기업 수익성에 그 영향이 상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AI 메모리를 위한 공정 전환을 진행하면서 레거시 D램에서 D램 선단 공정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각국이 AI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AI 메모리 수요에 대한 기대는 큰 상황이다. 미 스탠포드대 인공지능지수(AI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민간 AI 투자 금액은 미국이 가장 많은 672억 달러에 달했다. 이어 중국이 77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 미국 주도의 AI 시장 확대는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전기먹는 하마’…K전력기기 역대급 실적 예고
또한 AI는 흔히 ‘전기먹는 하마’로 잘 알려져 있다. AI 산업은 기본적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서버가 모인 데이터센터(IDC) 증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시장 내 노후화된 전력망 교체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AI 시대를 맞아 전력 인프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미국 내 변압기 시장은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미국 수출 비중을 확대하며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제품 품귀 현상에 따른 판가 상승과 더불어 환율 효과도 제대로 누렸다.
앞서 가장 먼저 실적발표에 나선 HD현대일렉트릭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은 3152억원에서 669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으며, 연간 수주 금액은 38억1600만달러로 목표치(37억4300만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4분기말 수주 잔고는 53억9900만달러(약7조7000억원)로,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상황으로 이 중 북미 시장(35억달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훌쩍 넘는다. 효성중공업(건설 부문 제외)과 LS일렉트릭 역시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하는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예견되자 국내 전력기기들은 일찌감치 미국 내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현지화 작업에 돌입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국내외 초고압 변압기 생산시설 증설에 3968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울산사업장 내 부지에 공장을 신축하는 한편, 미국 앨라배마에서도 제2공장을 추가 증설한다.
효성중공업도 지난해 6월 1000억원 규모의 공장 증설을 발표하는 등 2019년 12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초고압 변압기 생산기지를 인수해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내년 증설이 완료되면 미국내 생산능력은 현재 대비 2배로 늘어난다.
LS일렉트릭도 미국 현지 전력 배전반 생산업체를 인수해 북미 시장 공략 전초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LS일렉트릭의 경우 미국 AI 개발사 엑스에이아이(Xai)에 데이터센터용 전력기기를 공급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