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확정 직후 임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SK그룹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1978년 10월 구미 전자단지 인근 반도체 전문단지에 선경반도체를 출범시켰지만, 제2차 오일쇼크 등이 여파로 1981년 7월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가 있다.
최 회장은 SK그룹 내부 반대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은 한다”며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고, 인수와 함께 뚝심 투자를 이어 왔다. 대다수가 인수를 꺼리던 ‘천덕꾸러기’ 하이닉스는 그렇게 한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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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사상 처음 시가총액 200조원을 돌파하면서, 지난 15년간 SK그룹 차원의 공격 투자가 새삼 조명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시대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만큼 추후 주가 전망 역시 밝다.
24일 엠피닥터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7.32% 오른 27만8500원에 마감했다. 이로써 사상 처음 시총 2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126조6000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6개월여 만에 70조원 이상 불어난 것이다. 장중 한때 28만3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쓰기도 했다.
시총 200조원은 의미가 크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4’에서 3년 이내에 도전할 만한 목표로 ‘시총 200조원’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당초 목표보다 1년6개월 이상 앞당긴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급성장은 SK그룹 인수와 궤를 같이 했다. 2012년 SK그룹 편입 직전인 2011년 당시 13조원 정도였던 시총은 꾸준히 우상향해 2021년 1월 8일 100조원으로 불어났다. 산업계 인사들은 “이때부터 SK하이닉스가 한국 대표 기업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고 말한다. 메모리 시장 침체로 2023년 3월 16일에는 55조원대까지 쪼그라들기도 했지만, 이후 HBM 등 AI 고부가 제품들이 뜨면서 시총 규모는 급격하게 커졌다.
“내년 HBM4 시장도 주도할 것”
그 바탕에는 SK그룹 편입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공격 투자가 자리했다. 편입 직후인 2010년대 초반 3조원 초반대였던 연간 투자액은 2022년 19조7000억원, 2024년 17조9000억원 등 연간 2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SK텔레콤이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3차 공고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할 당시인 2011년 3분기 때 하이닉스의 분기 영업적자는 3000억원에 가까웠다”며 “이런 천덕꾸러기를 최고 기업으로 키운 건 최 회장의 뚝심 투자 덕”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추후 SK하이닉스 주가 흐름을 밝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HBM 경쟁력이 압도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AI 큰손’ 엔비디아에 5세대 HBM3E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미 올해 물량을 ‘완판’을 한 상태다. 6세대 HBM4 역시 지난 3월 엔비디아 등에 샘플을 공급했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내년에도 HBM4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