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 건설업 경기 악화로 건설근로자의 임금체불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하나은행의 에스크로 신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건설사의 공사대금 채권을 하나은행이 보관해 건설사 부도가 나더라도 하청업체·건설근로자가 임금을 온전히 받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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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신탁을 통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화두로 잡고 신탁 상품·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작년 11월 하나은행이 공사대금 지급 플랫폼 ‘노무비닷컴’과 협업해 출시한 에스크로 신탁이 대표적이다. 에스크로 특정금전신탁은 건설업체의 공사대금 채권을 은행에 맡기고, 자재구입·임금지불 등 필요한 대금을 지급할 목적으로만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건설업계는 시행·시공업체(원청), 각 업체의 협력·하청업체, 협력·하청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대금지급 구조로 돼 있다. 원청에 문제가 생겨도 협력·하청업체 근로자가 임금을 떼이지 않도록 하는 에스크로 신탁이 효과적인 이유다.
공사대금 지급 시장 점유율 1위 업체 노무비닷컴에 에스크로 신탁을 연계하면 다층적 채권·채무관계상 발생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건설사의 부도가 날 때에도 임금 압류를 방지하고 안정적인 대금 지급을 보장할 수 있다”며 “영세 건설업체와 건설근로자의 대금·임금 수급권을 보호해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건설업계 임금체불액이 늘면서 에스크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건설업 체불액은 2478억원으로 전년대비 26%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성 증대 여파 등으로 건설업체의 부도 위험이 커졌다”며 “공사대금과 임금체불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나은행은 건설근로자의 임금 보호를 위한 결제환경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신탁의 핵심 기능인 신탁재산의 독립성, 도산절연 효과를 활용한 공사대금 안전장치로 대금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발주자·원청기업·협력기업·건설근로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고 강조했다.
하나은행은 프로 스포츠 선수의 연금 마련에도 신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로 선수들은 은퇴 이후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 생활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잦다. 하나은행은 한국프로골프(KPGA)와 협약을 맺고 코리안투어 상금의 3%를 신탁으로 적립·운영해 특정 나이가 되면 적립금을 연금 방식으로 지급한다. 투어 성적에 따라 적립금액에 차이를 둬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하나은행은 KPGA 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리그로도 연금저축 신탁을 확장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신탁에 ESG를 접목해 ‘신탁 2.0’ 시대를 선도한다는 방침이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의 참전 기사들이 전사하면 상속인에게 재산을 양도하거나 신도들이 교회에 재산을 봉헌하기 위해 활용한 신탁은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개발계획 시행 당시 1961년 신탁업법 공표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하나은행은 과거 서울신탁은행이었던 서울은행을 합병한 이후 신탁 사업 확대를 이끌고 있다. 금융투자 성격이 강한 특정금전신탁에서 유언대용신탁 등 종합재산신탁으로, 이제는 상생을 가미한 ESG신탁으로 신탁 사업의 방향을 확대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신탁의 도산절연 효과를 에스크로 신탁 상품으로 구현한 것처럼 신탁을 통한 ESG 기여를 통해 신탁시장 저변을 넓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