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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금속제품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A사는 최근 물류대란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0년간 거래를 해 온 해외 바이어가 운임 폭등을 이유로 다른 나라 기업과 거래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A사 대표 박 모씨는 “오랜 기간 거래를 해 매출 의존도가 큰 곳인데, 발주 자체가 끊길 판이라 막막하다”며 “주변에도 우리 같은 상황에 처한 수출 중소기업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토로했다.
수출 중소기업이 물류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물건을 실을 배와 컨테이너를 구하기 어려워 납품에 차질을 빚는데다가, 운임비가 올라 수익성마저 나빠지는 상황이다. 대기업에 비해 해외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수출 중소기업들은 비싼 운임을 감수하면서라도 수출을 할 수밖에 없어 ‘팔수록 손실이 커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1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 519개사를 대상으로 물류애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73.4%는 ‘물류애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해운운임 상승’(65.4%)과 ‘항공운임 상승’(50.7%), ‘선복 부족’(33.1%), ‘컨테이너 부족’(24.7%) 등을 주요 어려움으로 꼽았다.
물류애로가 ‘영업이익 감소’(60.5%)와 ‘가격 경쟁력 저하’(48.9%)로 이어졌다는 기업도 많았다. ‘해외 거래처 감소’(25.2%), ‘재고·화물 보관 비용 증가’(21.2%), ‘계약 취소’(10.2%)를 겪었다는 곳도 있었다. 물류애로 해결을 위한 대응책으로는 ‘정부 지원’(33.9%)과 ‘바이어 납품기간 조정’(29.9%) 등을 주로 꼽았지만, ‘대응 방안 없음’(25.0%)이라고 답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농기계를 러시아 등에 수출하는 B사 대표는 “해상운임 상승으로 납품 가격이 다른 국가 경쟁사에 비해 급격히 올라간 상황”이라며 “단가는 올라가지 않는데 물류비만 늘어나니 수출 경쟁력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물류애로는 고스란히 중소기업 경영악화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이달 경기전망지수(SBHI)는 81.5로 전월 대비 1.9p(포인트) 떨어졌다. SBHI는 전 세계적인 ‘단계적 일상회복’ 추세에 따라 지난 9월부터 2개월 연속 상승했지만, 이달 들어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접종 확대와 ‘위드 코로나’ 시행에도 원자재 수급 애로와 해운·물류난이 지속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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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물류애로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 전용 선복을 제공하고 물류비 및 금융 지원에 나섰지만, 사태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선박이 항구에 묶이는 기간이 늘어난데다가, 미국·유럽 내 현지 인력 부족으로 항만·내륙 운송 적체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어서다. 내륙 운송비나 보관비 등을 추가로 내야 하는 중소기업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에 주방가전을 수출하는 C사 관계자는 “최근 유럽에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동규제가 강화하면서 수출품 통관이 늦어지고 있다”며 “연말 쇼핑시즌에 맞춰 제때 제품을 배송해야 하는데, 시기는 늦어지고 오히려 추가 보관료 부담 등 거래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해외 판로를 새롭게 개척하려는 기업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구에서 섬유피혁제품을 생산하는 D사 관계자는 “수출 성사를 위해서는 수시로 샘플을 보내고 테스트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출장이 원활하지 못한데다 물류비 급등으로 샘플을 보내는 데도 부담이 크다”며 “새 판로 개척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전용 샘플 운송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물류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한 운임비·보관비 등 자금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민간 해운·항공사와 협력을 통한 중장기 물류 분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물류난이 길어지면서 자체 물류망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물류난을 겪는 기업에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물류 지원에 나선 민간 해운·항공사와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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