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남학현 아이센스 대표이사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아크레이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전날(7일) 장 마감 후 일본의 진단기기회사 아크레이는 아이센스 주식 대량보유 상황 보고서를 통해 장내 매수로 아이센스의 지분을 11.38%까지 늘렸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아크레이는 아이센스 공동대표 중 한 명으로 개인으로서는 가장 지분율이 높은 차근식 대표(11.04%)보다도 많은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물론 차 대표의 자녀와 남학현 대표를 비롯한 회사 임원 등 차 대표의 특별관계인까지 모두 포함한 지분은 25% 이상이어서 엄밀히 아크레이가 최대주주는 아니다. 하지만 아크레이의 지분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는 점에서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아이센스와 아크레이 양측 경영진은 지난해 12월 미팅을 갖고 아크레이의 아이센스 지분 확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남 대표는 “지난달 아크레이와의 톱(Top) 미팅에서 ‘왜 우리 지분을 늘리느냐’ 물었고, 당시 아크레이측에서 ‘앞으로 아이센스 주가가 오를 것 같아 그랬다’고 답했다”며 “아크레이 지분은 11.38%고 우리 지분은 25%를 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약 10년간 추가 지분 확보없이 아이센스 2대 주주로 머물던 아크레이는 지난해부터 갑자기 KP LLC를 통해 지분 매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KP LLC는 아크레이가 지분 100%를 보유한 투자전문 자회사다.
남 대표는 “지난해부터 프락시(proxy·대리) 회사를 통해 아크레이가 1% 가까이 지분 매입을 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우리가 체크하고 있었고, 그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그래서 아크레이가 프락시 회사를 통해 투자하던 것을 아크레이 명의로 돌리면서 이번에 정식으로 공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목적이라는 아크레이측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바이오벤처 IR담당 임원은 “주식시장에 상장사가 아이센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상 정말 아이센스의 주가가 저점이라고 판단해 시세차익을 보려고 주식을 사들인 것이라면 최대주주의 지분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크레이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결국은 (아이센스) 경영에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70~80%는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릴 경우 공시의무도 주어지고 주식 매매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단순 시세차익만 노리고 지분율 확보에 열을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주요 주주가 대규모 주식거래를 하려면 반드시 30일 이전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 공시 대상은 발행주식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이며 이는 단일 거래액이 아닌 과거 6개월간의 거래수량과 금액을 모두 더한 수치다. 자유롭게 시세차익을 실현하기에는 결코 단순한 규정이 아니다.
특히 지난 2022년에는 당시 2대 주주였던 아크레이측 반대로 아이센스의 황금낙하산 규정 도입이 무산되기도 했다. 황금낙하산은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지키는 대표적인 조항 중 하나로 임원이 퇴직할 때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토록해 인수기업이 부담해야할 인수비용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아크레이는 아이센스와 10년 이상 거래해 온 협력사다. 시장에서는 그런 아크레이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아닌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확보에 나섰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한다. 제3자 배정 유증은 특정인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는 의미라 일반적으로 회사에 호재로 인식된다. 1년간 보호예수가 적용돼 단기적인 물량 부담도 작다.
하지만 아크레이는 장내 매수로 개인투자자의 주식을 사들였으므로 사실상 아이센스에 도움이 된 것이 없다. 이에 대해 남 대표는 “(제3자 배정 유증은) 우리가 아크레이에 더 주식을 주지 않겠다고 명확히 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아이센스를 일본 회사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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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혈당측정기(CGM) 기술이 없는 아크레이가 아이센스의 CGM 사업을 노리고 M&A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CGM은 채혈 없이 혈당 측정이 가능해 비만·당뇨 환자 급증 및 혈당 다이어트 유행과 맞물려 주목받는 기술이다. 하지만 개발이 어려워 CGM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손에 꼽는다.
국내에서는 아이센스가 유일하게 CGM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크레이 역시 오랜 기간 CGM 개발을 시도 중이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아이센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698억원, 매출채권 529억원, 재고자산은 835억원에 달한다. 자산가치가 높은 아이센스는 매력적인 M&A 대상인 셈이다.
아이센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처음 아이센스가 CGM 사업을 시작했을 때 아크레이에 협업을 제안했으나 당시에는 아크레이가 거절했었다”며 “이후 아이센스는 다른 곳과 협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아크레이가 태도를 바꿔 CGM 사업을 같이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이센스는 아크레이를 통해 자가혈당측정기(BGM)를 북미 월마트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유통하고 있기 때문에 CGM 사업 초기 BGM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아크레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추가 지분을 확보하느냐다. 지난해 아이센스는 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는데 이때 발행한 CB의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면 경영권 분쟁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전환청구권 행사를 통해 발행될 수 있는 신주 규모는 최대 10.43%로 아크레이가 CB 전액을 인수한다면 2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당장 전환청구기간은 오는 4월30일 도래한다.
이와 더불어 아크레이가 장내매수를 지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경영진 미팅에서 아크레이로부터 더 이상 지분 확보에 나서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았느냐는 이데일리의 질문에 남 대표는 “그런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