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도심 정원, 옛골목을 '느릿느릿' 거닐다[강경록의 이런여행]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강경록 기자I 2026.09.18 00:00:03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소박한 시간 차곡차곡 쌓인 도시 '세종'
풀향, 흙냄새 가득한 국립세종수목원
도심속 초록 쉼터, 일상 피로 '샤르르'
방축천 물길따라 닿은 '이응다리' 걷고
1446m 둥근 트랙 산책은 색다른 재미
레트로 문화공간 '조치원1926' 아트센터
기둥, 벽면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간직
시장 골목골목엔 상인의 정 가득 느껴

[세종특별자치시=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노잼 도시’라는 억울한 표찰을 훈장처럼 달고 살던 세종특별자치시. 하지만 삭막한 장막을 걷고 한 발짝만 깊숙이 발을 디디면, 이 어린 도시는 머쓱할 정도로 다정한 속내를 꺼내 놓는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마천루가 아닌 사람들의 ‘느린 걸음’이었다. 수목원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여유를 즐기고, 방축천 물길을 따라 뚜벅뚜벅 사색을 건네며, 금강 위 이응다리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가볍게 굴리는 이들. 조치원 시장 난전에서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세며 저녁거리를 고르는 생생한 풍경이 펼쳐진다.

세종 신도심의 아파트 단지와 하천 산책로. 주민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물길과 걷는 길이 나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세종 신도심의 아파트 단지와 하천 산책로. 주민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물길과 걷는 길이 나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아치형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세종 방축천 산책로. 높은 건물 사이에서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걷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아치형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세종 방축천 산책로. 높은 건물 사이에서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걷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연출한 무대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단지 바쁜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마주하는 가장 평범하고 결핍 없는 하루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슴슴하고 담백한 평범함이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툭 건드리는 최고의 여행 코스가 된다.

국립세종수목원의 초록 숲을 거닐고, 대통령기록관의 유리 회랑을 기웃거리다 주민들의 산책 동선에 슬그머니 발을 포개본다. 여행객만을 위해 특별히 포장된 샛길 대신, 세종 사람들이 도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잠시 빌려 입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삶의 행복이란 게 거창하게 반짝이는 것은 아닐 테다. 집 문을 열고 나서면 지척에 걸을 길이 있고, 볕을 피할 숲과 물이 흐르고, 문득 마음을 뉘일 책과 전시 공간이 손에 닿는 것. 그런 소박한 시간들이 퇴적층처럼 차곡차곡 쌓인 도시라면 처음 배낭을 메고 흘러든 나그네에게도 근사한 위로의 공간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국립세종수목원의 초록과 세종 신도심의 고층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활권 가까이에 들어선 정원의 풍경이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의 초록과 세종 신도심의 고층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활권 가까이에 들어선 정원의 풍경이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전시온실 전경. 넓은 잔디밭에 달과 토끼 모양의 조형물이 놓여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전시온실 전경. 넓은 잔디밭에 달과 토끼 모양의 조형물이 놓여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 전통 정원의 정자에서 관람객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난간 아래로 연잎과 연꽃이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 전통 정원의 정자에서 관람객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난간 아래로 연잎과 연꽃이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도심에 들어앉은 정원과 호수, 그리고 물길

‘국립세종수목원’은 아파트 단지의 정갈한 경계선과 울창한 온실의 유리 지붕이 마주치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사계절 온실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큼한 흙냄새와 열대 식물의 알싸한 풀향이 단숨에 폐부를 찌르며 일상의 피로를 씻어낸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거니는 65만㎡ 규모의 수목원은 거대한 아열대 식물원과 한국식 전통 정원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붓꽃 모양을 본뜬 유리 온실 아래 바오밥나무와 야자수가 자라는 웅장한 아열대관을 거닐다 보면 여기가 바삐 돌아가던 도시가 맞나 싶어 눈을 비비게 된다.

세종호수공원의 수상무대섬과 주변 산책로. 호수 위 보행교가 둥근 지붕의 공연장으로 이어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세종호수공원의 수상무대섬과 주변 산책로. 호수 위 보행교가 둥근 지붕의 공연장으로 이어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세종호수공원의 수상무대섬. 둥근 지붕을 얹은 공연장과 보행교가 호수 위에 놓여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세종호수공원의 수상무대섬. 둥근 지붕을 얹은 공연장과 보행교가 호수 위에 놓여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세종호수공원 옆에 자리한 '대통령기록관' 전경. 유리 상자라는 별칭답게 주변 풍경을 명경지수처럼 반사한다.
세종호수공원 옆에 자리한 '대통령기록관' 전경. 유리 상자라는 별칭답게 주변 풍경을 명경지수처럼 반사한다.
수목원을 빠져나와 물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축구장 62개 크기의 ‘세종호수공원’이 드넓은 품을 연다. 호수 한가운데 스티로폼처럼 단정하게 떠 있는 듯한 대통령기록관은 ‘유리 상자’라는 별칭답게 주변 풍경을 명경지수처럼 반사한다. 이곳은 단순한 기록을 모아둔 창고가 아니다. 아이 손을 잡고 반짝이는 유리 회랑을 거닐며 역대 대통령의 기록물을 넙죽 마주하는 생생한 배움터다.

더욱이 이 호수공원 주변으로 국립박물관단지가 웅장한 진용을 갖추어가고 있다. 이미 문을 연 ‘국립어린이박물관’을 시작으로 도시건축, 디자인, 디지털문화유산 등 5개의 전문 박물관이 순차적으로 둥지를 틀면 이곳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문화 놀이터로 탈바꿈한다. 주말마다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느긋하게 드나드는 이 거대한 문화 상자들은 세종 시민들에게는 ‘일상의 횡재’이자 삶의 만족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자산이다. 동시에 타지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세종의 참맛을 짚어먹는 알짜배기 문화 여행 거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청와대 접견실을 재현한 세종 대통령기록관의 전시 공간.(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청와대 접견실을 재현한 세종 대통령기록관의 전시 공간.(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금강 위에 그린 둥근 산책길, 이응다리

도심 사이를 가로지르는 ‘방축천’ 천변길은 가장 사적인 산책로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시간. 이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높다란 아파트 빌딩이 수면 위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제멋대로 자라난 수풀이 마치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물길 옆 아담한 산책로를 걸으면 귀가 심심할 겨를이 없다. 풀벌레 소리와 물결이 돌을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막한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동네 주민이 슬리퍼 차림으로 스쳐 지나며 무심하게 건네는 목례에 마음이 몽글해진다. 이 길은 단순히 통행이 아닌, 하루의 긴장을 풀고 도심 속에서 뜻밖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금강 위에 둥글게 놓인 세종 이응다리.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1446년을 기념해 다리의 총길이도 1446m에 달한다. (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금강 위에 둥글게 놓인 세종 이응다리.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1446년을 기념해 다리의 총길이도 1446m에 달한다. (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금강 위에 둥글게 놓인 세종 이응다리. 강변 녹지 너머로 신도심의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금강 위에 둥글게 놓인 세종 이응다리. 강변 녹지 너머로 신도심의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어둠이 슬금슬금 깔릴 즈음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보행교 일명 ‘이응다리’로 향한다. 방축천의 아늑한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거대하게 트이는 강바람을 맞닥뜨리면 시야가 확 트인다. 조선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첫 자음 ‘ㅇ’ 자를 금강 위에 냅다 던져놓은 듯한 이 원형 다리는 총길이가 1446m에 달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1446년을 기념하는 치밀한 숫자의 해학이다. 훈민정음 첫 자음의 둥근 곡선을 금강 수면 위에 그대로 옮겨 놓았으니, 다리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기분 좋은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니, 다리를 왜 이렇게 동그랗게 만들었담?’ 하는 엉뚱한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금강 위로 둥글게 이어지는 세종 이응다리. 다리 위 산책로와 강변 녹지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금강 위로 둥글게 이어지는 세종 이응다리. 다리 위 산책로와 강변 녹지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복층 구조로 이루어진 다리의 상부 산책로에 들어서면 탁 트인 강바람이 볼을 스치며 서늘한 감촉을 남긴다. 푹신한 나무 데크를 밟으며 둥근 트랙을 천천히 도는 동안, 금강의 잔물결이 자아내는 물비늘과 강 건너 아파트 단지의 불빛이 어우러져 기이할 정도로 다정하고 단란한 야경을 완성한다. 하부의 자전거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 탄 이들의 웃음소리가 다리 구조물 사이를 울리며 활기를 더한다. 1446m를 동그랗게 완주하고 나면 가슴 속 묵은 앙금마저 말끔하게 휘저어져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의 물빛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여행자의 발걸음을 한없이 붙잡는다.

조치원 세종전통시장 풍경. 아케이드 아래로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장을 보러 오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조치원 세종전통시장 풍경. 아케이드 아래로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장을 보러 오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종이냄새 가득한 ‘조치원 1927 아트센터’

신도시의 정갈한 풍경을 뒤로하고 조치원읍 옛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계 바늘이 비로소 제 속도를 되찾는다. 일제강점기 조치원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읍내 골목에는 빛바랜 간판과 정겨운 붉은 벽돌 건물들이 낡은 수묵화처럼 엎드려 있다.

조치원에서는 특히나 오래된 건물에도 눈길이 머문다. 조치원1927 아트센터는 옛 한림제지 공장을 고쳐 만든 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제사공장에서 출발해 편물공장과 제지공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높은 천장과 지붕을 받치는 골조에는 공장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다. 건물에 남은 흔적을 살피다 보면 조치원이 지나온 시간도 조금씩 읽힌다.

조치원의 유리공방 '오운'에서 참가자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창밖으로 오래된 상점과 골목 풍경이 보인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조치원의 유리공방 '오운'에서 참가자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창밖으로 오래된 상점과 골목 풍경이 보인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도심 정원, 옛골목을 '느릿느릿' 거닐다[강경록의 이런여행]
카페 ‘화양연화’에 들어서면 한쪽에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자개장이 ‘폼생폼사’ 자태를 뽐내며 들어앉아 있다. ‘할머니 댁 장롱이 왜 여기에?’ 하고 피식 웃음이 나는 찰나, 현대적인 세련됨과 옛것의 묵직한 온기가 오묘하게 포개진다. 이어 유리공방 ‘오운’에서는 유리공예 작품을 만드는 손길이 이어진다. 오래된 골목에 청년 작가들의 감각이 더해지며 동네 풍경도 조금씩 새로워진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치원 ‘세종전통시장’에 들어서면 시장 특유의 활기가 오감을 사로잡는다. 장터 골목마다 솔솔 풍기는 바삭한 파닭 냄새와 기름진 떡갈비 향, 그리고 “밀가루에 땅콩을 버무려 튀겼다”며 건네는 시장 상인들의 투박한 입담이 어우러져 여행자의 마음을 온통 쥐락펴락한다.

반듯하게 그어진 신도시의 도로를 지나 낡은 지업사와 옛 목공소가 자리를 지키는 조치원의 골목을 터벅터벅 걷는 길. 첨단 인프라와 숲, 그리고 오래된 골목이 각자의 속도로 숨 쉬는 길 위에서 여행자의 발걸음도 담담히 느려지고 있었다.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전시 온실 내부. 키 큰 식물 사이로 관람객들이 걷는 길이 굽어 이어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전시 온실 내부. 키 큰 식물 사이로 관람객들이 걷는 길이 굽어 이어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TheBeLT

- "오싹한 좀비 도시부터 판다 자매까지"…에버랜드 가보니 - 관광벤처, 각자도생 넘어 공동 성장으로…“정책 목소리 내는 구심점 돼야” - "입장료 의존하는 테마파크는 한계… 플랫폼을 수출합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