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유]는 법원 판결문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다. 한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법원이 책임과 결과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따라간다.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판결문에 남은 기록을 통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2025년 12월, 서울남부지방법원.
항소심에 출석한 김 씨는 1심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캄보디아에서 주식 리딩방의 조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범행을 인정했던 김 씨는 자신은 투자자들을 속이려 한 적도 없었고, 그냥 단순히 전화만 받는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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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1심에서 인정했던 고객센터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객센터’와 ‘콜센터’가 따로 있었고, 자신은 ‘콜센터’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객센터는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피해자들의 전화를 받아 세금이나 수수료를 더 내야 돈을 찾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곳이었고, 콜센터는 단순히 전화를 받거나 투자자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곳이었다고 했다.
투자자들에게 추가로 돈을 뜯어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했다는 주장이다.
김 씨는 ‘매니저’라고 사칭한 것도 단 두 번밖에 없었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2025노1517)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김 씨는 1심에서 범행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고,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갑자기 항소심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고객센터와 콜센터가 각각 있었다는 김 씨의 주장은 다른 조직원들의 진술과 달랐다. 김 씨보다 먼저 망고단지 고객센터에서 일했던 한국인 여성 등 다른 공범들 역시 두 조직의 역할이 분리돼 있다고 진술하지 않았다.
김 씨 주장처럼 전화 응대, 안부 전화만 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에 가담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온라인으로 대화하던 여성 매니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도록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사기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망고단지에는 사기를 치는 팀이 여럿 있었고, 자신이 모든 팀의 범행에 가담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조직은 서로 다른 투자회사와 매니저를 사칭하는 팀, 대만인을 상대로 범행을 하는 팀 등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들 팀은 ‘총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지시를 받았고, 하나의 큰 사무실에서 별도의 공간 구분 없이 일했다. 그곳에서 김 씨는 유일한 한국인 여성이었다.
김 씨는 급기야 중국인 조직원에게 감금과 폭행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확인한 그녀의 행적은 그녀의 말과 달랐다.
김 씨는 근무시간 외에 사무실 밖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고, 퇴근한 뒤에는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사용했다.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망고단지 밖으로 비교적 쉽게 외출할 수도 있었다. 김 씨가 감금이나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시 또 캄보디아로
재판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도 드러났다.
2024년 5월 13일 귀국했던 김 씨는 불과 41일 만에 6월 23일 캄보디아로 갔다. 김 씨는 또 다른 리딩방의 통역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감금과 폭행을 당해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는 김 씨가 또 다른 주식 리딩방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캄보디아로 갔다는 사실을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항소심은 김 씨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판결 결과는 징역 5년형에서 4년형으로 줄어들었다.
항소심이 눈여겨 본 것은 김 씨가 자백을 번복한 사실이 아니라 범행에 가담한 시점이었다. 법원이 인정한 김 씨의 망고단지 활동 기간은 2024년 3월 30일부터 5월 12일까지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돈을 송금한 기간은 상당수가 그 이후였다.
한국으로 돌아간 김 씨가 조직이 벌인 범죄까지 모두 책임져야 할까. 김 씨의 죄를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를 핵심 쟁점으로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돈을 송금한 날짜보다 피해자를 속이기 시작한 시점이 중요하다고 봤다. 김 씨가 조직에 있을 때부터 피해자를 속이는 행위가 시작됐다면 김 씨가 조직을 나온 이후 피해자들의 돈이 입금됐더라도 이는 김 씨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반대로 김 씨가 조직을 떠난 뒤에 사기 행위가 시작됐다면 김 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피해자 62명, 피해액 약 84억원으로 공소사실을 확대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리딩방 조직과 관련해 인정한 피해 규모는 42명, 65억원이었다. 이중 김 씨에게 별도로 사기죄가 인정된 피해자는 15명, 피해액은 약 30억원이었다.
예를 들어 4월 28일부터 속기 시작해 김 씨와 두 차례 통화하고 6월 4일 5000만원을 보낸 이 씨의 피해는 김 씨 책임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속이기 시작한 시점이 김 씨가 떠난 뒤거나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피해자 16명에 대해선 사기죄가 무죄로 판단됐다.
일부 피해자에 대해 무죄로 바뀐 점이 김 씨의 형량에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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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항소심에서 김 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판단은 하나가 더 있었다.
가짜 주식 거래 사이트를 운영한 행위였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의 거래소 허가를 받지 않고 주식 등 증권이나 장내파생상품을 사고파는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항소심은 이들이 운영한 사이트가 ‘가짜’였고, 그로 인해 실제로 거래된 주식 등 증권이 없으니까 자본시장법은 위반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그로 인해 이 역시 ‘무죄’로 결론을 내렸다.
김 씨와 검찰 모두 상고했다.
2026년 4월 30일, 대법원(2026도459)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항소심이 김 씨의 범죄 범위를 줄여서 판단한 것에 대해선 인정했으나 자본시장법을 무죄로 본 것에 대해선 잘못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실제 주식거래가 없더라도 일반 투자자가 정상적인 거래 시장이라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췄다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거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봤다. 이들 조직이 운영한 사이트도 그런 외관을 갖췄다고 볼 여지가 있으니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였다. 유죄 부분까지 함께 파기되면서 징역 4년형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김 씨가 이 대규모의 사기극에서 한 일은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받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원이 주목한 것은 그 전화가 투자자들에게 어떤 믿음을 줬는지였다. 온라인에서 대화하던 여성 매니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 그 믿음을 만들어줬던 김 씨의 목소리.
월 1000만원의 월급, 한 달 반의 짧은 기간은 1심과 2심에서 각각 징역 5년과 4년의 형으로 돌아왔다. 김 씨의 최종 형량은 서울남부지법에서 다시 정해진다.
전편 “전화만 받으면 월 1000만원”…망고단지의 비밀①[그날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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