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 이들 드라마는 지상파 TV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에 대부분 제작되었다. 최근 제작된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해 화질 면에서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도를 ‘시각적’으로 높일 수 있다.
특히 12·12 쿠데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등이 1990년대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되어 있다. 왜 1970~1980년대를 보낸 기성세대가 ‘계엄’이라는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드라마 선정은 역대 시청률 상위 한국 드라마 중에서 골랐다. 다행히 와챠피디아에 정리가 되어 있어 그곳 리스트를 참조했다.
◇모래시계
지상파 방송사 중 후발주자였던 SBS는 1995년 야심차게 드라마 ‘모래시계’를 선보였다. 당시는 문민정부로 일컫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물질적 풍요가 커지면서 잊혀졌던 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래시계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월드스타 반열에 올라선 이정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도’ 하나만 의지한 채 싸우는 그의 모습은 당시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다. 정동진역이 전국적인 유명 관광지가 된 것도 이 드라마 덕분이었다.
시대 배경은 박정희 정부 때부터 전두환 정권(제6공화국) 출범 직전까지를 삼고 있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관통했던 굵직한 사건이 배경이 됐다. 그 예가 YH사건, 5·18 광주민주화 운동, 삼청교육대 등이다.
◇여명의 눈동자
1990년대 드라마왕국으로 일컬어지던 MBC가 1991년 10월부터 1992년 2월까지 방영한 36부작 드라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 촬영을 감행했다. 원작은 소설 ‘여명의눈동자’로 1970년대 일간 신문의 연재 소설이었다.
소설에서는 ‘악인’으로 단죄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 ‘대치’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다른 평가를 했다.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고 할까. 눈 쌓인 지리산에서 대치는 사랑하는 여인 여옥을 품에 안고 숨을 거둔다. 하림(박상원)의 나레이션으로 끝나는 눈 속 끝 장면 또한 한국 드라마사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다.
극 중 여옥은 재판정에서 이 같은 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외침이었다.
“우리 정신대는 몸을 팔았지만, 당신들은 나라를 팔았죠? 그래도 살아남았잖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우리도 수치스럽고 죽고 싶었지만, 살아남으려고 별짓을 다했어요. 사이판 마지막 날, 일본군들은 우리 조선 정신대를 모조리 죽였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죽어 없어지길 바랐어요. 당신들, 조선 사람들도 그런가요?”
◇야인시대
SBS에서 2002년부터 2003년 9월까지 방영된 124부작 대하드라마다. 일제 때부터 해방, 한국전쟁, 제4공화국에 이르는 시대에까지 실존했던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인기는 1부가 더 많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의 드라마판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 느와르물에 가까웠다. 배우 김영철이 나오는 부분은 정치드라마로서의 면모가 더 잘 드러났다. 극 중 김두한의 얼굴이 안재모에서 김영철로 급변하는 게 ‘밈’처럼 남아 있는 게 아쉽지만 작품성은 2부가 더 높다는 평가다.
이 드라마는 조직폭력배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4·19혁명, 5·16군사정변, 제3공화국 출범, 유신헌법 통과까지 굵직한 현대사를 다뤘다. 이들 사건을 김두한의 시선에서 보고 평가한다는 게 이채롭다.
◇코리아게이트
1995년 10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SBS 정치 드라마다. 1976년 있었던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배경인데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권 전반부가 시대적 배경이다.
코리아게이트는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 등의 로비스트가 미국 의회에 불법 로비를 했다는 게 미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일어난 정치 스캔들을 의미한다.
◇제3공화국·제4공화국
MBC의 ‘공화국 드라마’ 중 1990년대를 장식하는 시리즈다. 이름 그대로 역사적 현실을 최대한 고증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시대를 살았던 남성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다만 드라마 방영 중에도 당시 인물들이 생존하고 있어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MBC의 공화국 시리즈는 1981년 ‘제1공화국’으로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제5공화국을 끝으로 더는 제작되고 있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후속작이 되어야 할 ‘제6공화국’이 아직 진행 중인 이유가 크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개헌에 성공해야 비로소 제7공화국이 시작한다.
만약 제6공화국이 실제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약 40년에 걸친 역사적 사건들이 다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어느 사건이 우선적으로 제작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제6공화국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예상한다면 ‘비상계엄과 탄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자체만으로도 역대급이자 초유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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