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노믹스)오래 사는 것의 리스크

김윤경 기자I 2010.06.08 10:00:00
[이데일리 김윤경 기자] 최근 주말 TV 드라마엔 퇴직한 가장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눈길을 끈다.

▲ 드라마 `민들레 가족`
`민들레 가족`에선 퇴직한 남편(유동근 분)이 사업을 하는 것을 결사 반대해 아내(양미경 분)가 가출까지 벌였다. 남편은 뭔가 쓸모있는 경제 활동, 그것도 이제는 자신이 사장이 되는 사업을 하고자 하지만 아내는 괜히 나섰다 망할까 두려워 반대한다.

퇴직 이후의 준비되지 않은 삶과 이로 인한 갈등이야 그동안에도 봐 왔던 것이지만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출산율이 높은 시기에 태어난 세대. 우리나라의 경우 1946~1964년 출생자들이 속한다)의 퇴직이 개시되는 해라 이런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각종 조사 결과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은 내집 마련과 자식 교육 때문에 모아둔 돈이 별로 없고 노후가 막막한 편이란 우려가 나온다. 선진국처럼 넉넉한 연금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체력은 양호한데 일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정서적 충격은 어쩌면 더 클 지도 모른다.

10년쯤 전 여의도 한 투자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투자교육에 나선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 주제와 상관없이 그 분은 `오래 산다는 것(長生)의 리스크`를 강조하며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늙어가고 있고 늘어나는 평균 수명에 비해 정년은 너무 빨리 찾아오는데다 퇴직 후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지는데, 그러면서도 금리는 낮아져 과거 퇴직 대책의 전부였던 이자 소득을 기대하긴 어려워진다는 얘기였다. 

당시 기자의 부친도 정년퇴직을 하신 시점이었기에 이야기는 더 쏙 들어왔다. 부친의 경우 일본어에 능통한 터라 한 기업 교육원에서 일본어 강의를 맡게 됐고 이후 구청 문화원 등에서 계속 강의를 하고 계신다. 돈벌이라기 보다는 규칙적인 생활과 일에서 오는 보람이 퇴직 이후 무력감을 떨쳐낼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평가다.

그러나 친구 등 주변분들의 경우 `할 일이 없는` 고통이 적잖다고 한다. 기업체 임원까지 지냈어도 찾는 곳이 없어 지하철 택배로 소일을 하거나 하늘의 별따기인 아파트 경비 자리를 얻으려 대기하는 이도 많다.

조직에서 오랜 시간 교육받은 고급 인력이고 아직 `생생한` 나이인 퇴직자들이 갈 곳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환경인 것. 자영업에 섣불리 나섰다가 퇴직금만 날리는 경우도 다반사. 그러니 드라마에서 아내가 가출도 감행한 게다.

앞서 인터뷰 대상으로 언급했던 분은 일본의 유연함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었다. 퇴직한 일본 증권거래소의 한 임원이 과거 직장인 거래소에서 간단한 데이터 정리업무를 맡기도 하고 어떤 이는 청소일도 서슴치 않은 것을 보고 놀랐지만 그만큼 퇴직자는 일해서 좋고, 회사는 필요할 경우 이 사람으로부터 고급 자문을 얻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단카이(團塊·단카이)로 불리는 베이비부머 은퇴도 먼저 맞았지만 큰 충격은 없었다. 정부가 앞서 퇴직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고 기업들은 다양한 고령자 재고용에 나서고 있으며 퇴직자들도 유연한 사고로 일자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 논의되는 얘기들은 많다. 그러나 진척이 잘 되지 않는데엔 유연한 사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 사는 것의 리스크는 부담을 나눌 때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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