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떤 약물이 너무 안전하다는 건 그 만큼 약효가 떨어진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약효와 독성은 어느 정도 비례한다.”
“우리가 거기(줄기세포치료제 개발)에 돈을 많이 썼고, 노력은 많이 했는데 이젠 그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일부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이 줄기세포치료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최근 중간엽줄기세포(MSC) 기반 줄기세포치료제 임상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모달리티(치료접근법) 자체에 대한 비관론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줄기세포치료제 유효성 입증 번번이 실패
17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코아스템켐온(166480)이 루게릭병 치료제로 개발 중이었던 자가골수 유래 MSC ‘뉴로니타-알주’ 임상 3상이 실패한데 이어 MSC 기반 줄기세포 개발에 주력하던 에스씨엠생명과학(298060)도 임상 2상에서 또 미끄러졌다. 2022년 8월 ‘SCM-AGH’ 급성 췌장염 환자 대상 임상 1/2a상에 이어 최근 ‘SCM-CGH’의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임상 2상에서도 잇달아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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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줄기세포치료제의 임상 실패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강스템바이오텍(217730)의 ‘퓨어스템-에이디주’ 임상 3상 결과 1차평가지표인 12주차 EASI-50(습진중증도평가지수 50% 이상 감소) 달성률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해당 임상은 2019년 12월 실패하고 두 번째로 시도했는데 또 실패한 것이다. 강스템바이오텍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퓨어스템-알에이주’의 경우 2022년 5월 임상 1/2a상 톱라인 결과 위약 대비 환자군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같은해 1월 안트로젠(065660)은 당뇨병성 족부궤양 신약 ‘DFU-301’ 임상 3상에서 1차 유효성 평가를 만족하지 못했다.
2012년 1월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으로 식약처 품목허가를 획득한 메디포스트(078160)도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메디포스트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뉴로스템’은 2020년 7월 임상 1/2a상 결과, 통계적 유의성 달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동종 제대혈 유래 MSC가 주성분인 미숙아 기관지폐이형성증(BPD)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던 ‘뉴모스템’이 임상 2상 결과 1차평가지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미 시판 중인 카티스템의 적응증 확대에도 실패했다. 최근 식약처는 카티스템의 적응증에 발목 연골 손상을 추가하는 품목허가 변경 신청에 대해 효과 불인정으로 반려했다. 통계적 유의성은 보였으나 임상적 유용성 입증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이유로 네이처셀(007390)도 2023년 4월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조인트스템’의 조건부 허가 반려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파미셀(005690) 역시 2019년 2월 간경변 줄기세포치료제 ‘셀그램-LC’의 조건부 허가를 노렸으나 반려당한 아픔이 있다.
대부분 국내 줄기세포치료제들이 임상 2상의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식약처의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한 줄기세포치료제가 0건인 실정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줄기세포치료제가 어떤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임상에서 성공하긴 어렵지 않을까”라면서 “적어도 지금보다 세포 수를 1000배는 늘리고 반복적으로 투약해야 약효가 증명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뚜렷한 효과 없이 그저 안전하기만 할 뿐인 약을 돈 내고 써야 하나”라며 “이제 단순히 세포를 배양해서 그걸 찔러넣는 종류의 사업 형태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전 세계적으로 명맥 끊긴 줄기세포치료제 인허가
글로벌 인허가 현황을 살펴봐도 2019년 이후 시판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는 전무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표준치료법(SoC)으로 인정한 줄기세포치료제는 없다.
앞서 FDA는 2011년 뉴욕혈액센터가 개발한 조혈모세포 치료제 ‘헤마코드’(Hemacord)의 품목허가를 승인했다. 다케다제약이 개발한 지방 유래 중간엽줄기세포치료제이자 성인 크론병 환자 수반 복합 치루 치료제 ‘알로피셀’(Alofisel)은 2019년 FDA의 첨단재생의료치료제(RMAT) 지정을 받았다.
이 두 사례도 엄밀하게 따지면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헤마코드는 제대혈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를 담고 있는 혈액제제이기 때문에 줄기세포치료제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알로피셀은 유럽연합(EU)와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각각 2018년, 2021년 시판 허가됐으나 2024년 12월 충분한 효능을 입증하지 못해 EU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탈리아 제약기업 치에시(Chiesi)가 개발한 각막 손상 환자의 시력 회복 치료제 ‘호노클라’(Holoclar)는 2015년 2월 유럽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EMA는 지난해 2월 호노클라의 조건부 승인을 정식 시판 허가로 전환했다. 유럽에서나마 시장에 안착한 케이스다.
JCR 파마슈티컬즈(JCR Pharmaceuticals)가 개발한 ‘템셀’(Temcell)은 2015년 9월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 일본에서 승인된 세계 최초의 MSC 치료제가 됐다. 급성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제로 개발됐던 해당 치료제는 미국 메릴랜드에 본사를 둔 오시리스 테라퓨틱스의 ‘프로키말’(Prochymal)을 기술도입해 허가받은 신약이다. 프로키말은 2012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조건부허가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FDA와 EMA의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하진 못했다. JCR 파마는 2021년 3월 표피수포증 개발을 중단하면서 적응증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줄기세포치료제의 세대 교체 타이밍?
그럼에도 재생의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임상 실패 케이스는 주로 MSC인 만큼, 줄기세포치료제 자체의 한계라기보다는 MSC의 한계로 봐야 하지 않겠다는 시각에서다.
MSC는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활성물질을 통해 주변의 세포를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포 재생효과인 ‘파라크라인 효과’를 활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MSC가 안전하긴 하지만 간접적인 치료 방식의 줄기세포치료제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며 “간접적으로 주변 환경을 개선해서 원하는 약리효과를 내려고 하면 기존의 측정 방법으로는 그 차이를 구분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줄기세포치료제 시장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1세대 줄기세포가 아닌 차세대 줄기세포치료제라면 보다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에서다. 일반적으로 MSC가 포함된 성체줄기세포치료제가 1세대로 분류된다면 배아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직접교차분화줄기세포(iNSC) 등은 2세대로 분류된다.
실제로 ‘역분화줄기세포’라고 불리는 iPSC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벤처도 우후죽순 생겼다. 넥셀, iPS바이오, 입셀, 카리스바이오, 테라베스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iNSC 개발사로는 코넥스 상장사인 SL테라퓨틱스(옛 스템랩)가 있다. 2023년 5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에스바이오메딕스는 다른 코스닥 상장사들과 달리 MSC가 아닌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MSC 중심이었던 줄기세포치료제 시장이 차세대 줄기세포치료제 중심으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본다”며 “국내에서 기존에 시판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는 모두 MSC 기반”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바이오벤처 대표는 “이제는 줄기세포가 갖고 있는 재생적인 부분, 아예 없던 기능을 만들거나 대체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봤다.
재생의료를 꼭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이라는 방법으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지금은 iPSC 외에도 유전자치료제, 엑소좀, 리보핵산(RNA), 저분자화합물 등 재생의료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이 나오고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약효를 증명해내면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