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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동해안 어황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명태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고 오징어는 ‘금(金)징어’라 불릴 만큼 귀해졌다. 도루묵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7497톤(t)에 달하던 어획량은 2023년 382t으로 급감했고 2024년에는 고작 270t에 그쳤다. 우리가 익히 알던 동해안의 겨울 생선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바다는 지금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고 있는 셈이다.
도루묵뿐만이 아니다.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류성 어종의 어획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반면 고등어, 삼치, 갈치, 참다랑어 같은 난류성 어종은 해마다 그 어획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방어 등 대형 어종은 점차 북상하며 겨울철 제주도와 남해안 해역에 대규모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해수 온도의 상승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56년간 한국 연근해의 표층 수온은 평균 1.44℃ 상승해 전 세계 평균 상승률의 두 배에 이른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1.9℃가 올라 한류성 어종의 산란 적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도루묵은 차가운 바다에서 산란하는 한류성 어종이다. 하지만 수온이 오르면서 산란지는 점점 줄고 개체 수 역시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 비어업인에 의한 통발 남획까지 더해지면서 도루묵 자원은 더욱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은 특정 어종의 감소를 넘어 우리 어업의 방식과 어업 구조 전반을 흔들고 있다.
이에 정부와 연구기관은 자원 회복과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도루묵을 자원 회복 대상 어종으로 지정하고 산란장 보호와 인공 부화·방류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실시간 수온 관측망을 확대하고 인공지능 기반의 이상 수온 예측 시스템도 새롭게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수온 상승이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바다가 더는 도루묵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뀐 이상 치어 방류만으로는 자원 회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기후변화로 인한 어종 변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어업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첫째, 정부는 동해안 어민들이 어획 어종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난류성 어업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난류성 어종의 소비를 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난류성 어종이 제값을 받지 못하면 어민들의 전환 의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식문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대표적인 난류성 어종인 방어가 겨울철 대표 수산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수온이 높아진 남해안과 제주 인근 해역에 대형 방어가 몰리며 방어는 겨울의 제철 횟감이 됐다. 이는 어종 변화에 따른 소비 패턴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케팅이 뒷받침된다면 새로운 어종 역시 우리 식탁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도루묵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어종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며 자원 복원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라지는 어종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해양 환경에 맞춰 어업 구조와 식문화를 전환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변화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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