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낯선 얘기여서 믿기 어렵지만 이런 회사가 실제로 존재한다. 지난해 매출 35조 원을 돌파하며 세계 제과업계의 일인자로 우뚝 선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마즈 인코퍼레이티드(Mars Incorporated)가 그 주인공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세계 최대규모의 개인기업 가운데 하나로도 손꼽힌다.
초콜릿바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스니커즈(Snikers)를 비롯해 도브(Dove), 트윅스(Twix), 앰앤드앰즈(M&M’s) 등 초콜릿 및 스낵 브랜드와 페디그리(Pedigree), 시저(Cesar), 위스카스(Whiskas), 그리니즈(Greenies)등 애완동물 브랜드, 위글리(Wriglet’s)라는 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업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골목에 있는 삼영빌딩. 마즈 인코퍼레이티드의 한국법인인 한국마즈 본사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5대 원칙(The Five Principles)’이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유리 장식물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이 회사 경영의 근간이 되고 있는 5대 원칙은 품질, 책임, 상호성, 효율, 자유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다른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영철학인 ‘상호성(Mutuality)’이 관심을 사로잡는다.
“마즈에서는 오너도, 말단 직원도 모두 마즈의 사업목적을 실행하는 동료, 즉 어소시에이트(Associate)로 대우받는다. 피고용자(Employee)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금기시된다. 직급과 직책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들을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방침에서다.”
한국, 대만, 홍콩 등을 총괄하는 김광호(50) 한국마즈 대표는 지난 1911년 창업 이후 1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마즈의 장수비결을 상호성에서 찾았다. 상호성은 직원들의 평등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는 당연시하는 회장에서부터 대표이사는 물론 임원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과 특권도 이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즈의 회장, 대표이사, 임원들은 각자의 집무실은 물론 전용 차량, 비서도 갖추고 있지 않다. 심지어 이들 중역에게 별도의 지정된 주차공간도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회장이라도 사정이 있어 회사에 늦게 출근하는 경우 주차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한단다.
“상호공유된 이익만이 지속 가능하다. 마즈는 고객은 물론 공급자, 경쟁업체, 직원들과 이익을 공유한다는 경영철학을 창업 이후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김 대표는 상호성은 경쟁업체와도 ‘윈-윈’을 하게 만드는 기업문화를 마즈에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컨대 초콜릿바 시장을 석권해 다른 경쟁업체들이 문을 닫게 하기보다는 관련 시장을 키워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이 회사의 기본적인 경영원칙이다. 승자독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밀림의 법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다.
“마즈에서는 누구나 직책 대신 애칭을 부른다. 그러다보니 직원들과의 평등한 관계 정립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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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집무실도 역시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사무실 중앙에 있는 그 흔한 칸막이 하나 없이 사방이 개방돼 있는 조그만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마즈의 상호성은 창업자인 프랭크 마즈의 아들인 포리스트 마즈가 1947년 ‘회사의 목적(The company’s objective)’이라는 경영철학을 선포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포리스트 마즈가 그해 7월28일 임직원들에게 A4 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를 통해 “마즈는 오로지 고객과 유통업자, 공급자, 경쟁자, 정부기관 그리고 모든 구성원과 주주들과의 상호적인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 이후 상호성은 마즈의 기업문화를 대표하는 경영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직원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마즈가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가 직원들의 이력관리다. 직원들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어하는 분야에서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커리어 관리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가동한다. 그러다 보니 마즈에서 10년 가량 근무한 직원들은 평균 5~6가지 직무를 거치게 된다.
영업에서부터 마케팅, 생산관리, 연구·개발(R&D), 인사, 재무관리 등 회사의 주요 직무를 넘나든다. 직원들을 한 두 분야의 직무만 수행하도록 하면서 전문성을 극대화시키려는 일반적 회사문화와는 크게 다르다. 특히 마즈에서는 ‘얼마나 유능한 매니저들을 많이 양성했는가’가 임원들 평가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다. 직원들이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임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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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김 대표의 생각은 혼자만의 자랑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마즈는 미국 포천지와 함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하고 있는 GPTW 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외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직장에 대한 행복도가 높다 보니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직원 3명 가운데 1명에 이른다. 한국법인이 설립된 지가 불과 16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이직률이 낮다.
김 대표는 “직원마다 평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직하려는 직원들이 거의 없다”면서 “특히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마즈라는 회사의 존재 이유가 서로 들어맞기 때문에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의 인사담당 김종복 상무는 “이직률이 5% 안팎으로 한국기업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며 “회사가 낮은 이직률을 오히려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한국마즈는 여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전체 직원 72명 가운데 여성이 43%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GWP(Great Work Place) 코리아가 선정한 ‘2013 여성(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기업’ 대상 수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즈 본사에서도 매니저 30% 이상은 반드시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규정을 운영할 정도로 여성인력 육성에 관심이 높다.
“여성들에게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나 규정보다는 경영자들의 세심한 배려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경영자가 들리지 않는 미묘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마즈가 여성들의 출산휴가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대체인력 제도’가 대표적이다. 출산휴가를 신청하는 여직원이 있으면 휴가가 시작되기 석달 전 이 여성을 대체할 계약직을 미리 뽑아 업무인수 인계를 시킨다. 휴직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한 여성직원은 계약직 직원과 ‘바통터치’를 하면 된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 여성인력이 업무 공백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고안해낸 제도다. 한국마즈는 회사 규모가 더 커지면 앞으로 출산휴직자의 업무만을 전문으로 대체하는 인력들을 별도로 채용, 운영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은 예외없이 훌륭한 기업철학에 대해 얘기하지만 정작 이를 실천하는 기업은 드물다. 마즈를 찾아 온 외부 손님들이 마즈의 기업문화가 특이하다고 칭찬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경영자나 기업주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한국마즈와 같은 ‘펀 경영’을 펼치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
김 대표는 ‘펀 경영’의 출발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작은 행동’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