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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10년간의 우리나라 배출권거래 시장은 해외에 비해 배출권 가격의 저평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기업의 감축 투자 계획 수립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고 거래가 부족해 신뢰할 만한 가격 발견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평가 문제는 공급이 많기 때문인데 전형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배출권 시장의 속성을 정책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점과 관련된다. 정부가 허용배출량을 완화적으로 공급하면 기존 배출권 수요자도 공급자가 돼 잉여배출권이 늘어 가격이 하락하며 반대로 제약적으로 할당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발표할 2030년까지의 할당정책(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은 8710원인 배출권 가격이 장기적으로 어떤 흐름을 보일지 추세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시장정보가 될 것이다. 의미 있는 허용배출량 감축경로를 제시하고 유상할당을 대폭 확대하는 등 배출권 적정 공급을 통해 가격 시그널이 높은 감축 실적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길’이 우리나라에도 열리길 기대한다.
유럽의 길에는 또 하나의 비결이 있다. 급격한 감축에 부담을 느끼는 산업계에 대해 유럽은 차등 감축과 차등 지원으로 적극 대응하고 있다. 작년 유럽의 기록적인 감축도 발전 부문이 주도했다. 발전 부문에 더 높은 감축목표를 부과함은 물론 10년 전 과잉배출권 문제가 최고조에 달할 때 발전 부문에 대해 100% 유상할당을 의무화했다. 더 주목할 것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으로 높아진 산업부문의 전기료 부담을 유상할당 자금으로 보조하는 정책이다. 전기집약 업종을 중심으로 지원한 보조금이 유상할당 경매수익의 25%에 달하는 파격적인 정책이다. 유상할당 경매수익을 기후 기술, 정의로운 전환뿐만 아니라 산업계 등 기후 전환을 위한 광범위한 재정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배출권거래제의 중요한 역할이 되고 있다. 4차 계획기간 동안 할당정책, 유상할당, 재정레버리지 등에서 빅딜이 있기를 기대한다.
다음으로 높은 가격변동성과 거래량 빈곤은 배출권을 거래하는 유통시장 혁신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거래량 빈곤이 높은 변동성을 야기하는 악순환을 풀기 위해 현재 배출권 선물시장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유통거래의 중심이 배출권 현물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더구나 정산목적의 현물을 시장에 내놓는 기업은 우리나 유럽이나 드물다. 무상할당 현물을 보유한 기업들은 선물을 매도해 가격위험을 헤지할 수 있어야 감축 투자 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금융회사나 외국인은 할당 기업이 매도한 배출권 선물을 받아주는 동시에 투자 목적과 차익거래 목적(현물과 선물, 해외와 국내 배출권 가격 차이 등)으로 거래를 하게 될 것이다. 이때 한편의 우려대로 시장의 과도한 투기화는 경계해야 한다. 미결제약정 한도 관리 등 미시적 규율 수단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사례를 보면 할당정책을 강화하고 유통시장을 혁신하더라도 잉여배출권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은 여전히 중요한 도전이다. 실제 유럽의 연간 배출량 통계를 보면 할당 배출권(공급)이 인증 배출량(수요)보다 체계적으로 많다. 대부분의 해외 시장이 별도의 안정화 제도를 두는 이유다. 유럽은 잉여배출권이 임계 수준을 넘으면 유상할당 등 경매 공급을 조절해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고 북미지역은 잉여배출권으로 가격이 임계가격을 벗어나면 경매 공급을 조절해 안정화를 꾀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가 안정화 제도를 도입한다면 유럽방식보다 북미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 유럽방식을 도입하기에는 향후 할당정책이나 유통시장 혁신 등으로 임계 잉여배출권의 추정오차가 클 수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의 탄소세 가능성 등에 따른 국부 유출 가능성을 고려하면 과도하게 저평가된 배출권 가격을 정상화할 필요도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8710원으로는 기업들의 실질적인 감축 투자를 이끌어 낼 수가 없다. 이 같은 기후변화 대응 흐름까지 고려하면 경매 최저가격제와 최고가격제를 운영하고 있는 북미 모델이 시장 정상화에 실효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