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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異야기]’사양산업에 벤처 깃발 꼽다’.. 김강훈 쌍영방적 대표

김형욱 기자I 2013.07.18 06:00:00

한지 꼬아서 만든 실.. 고부가가치 신소재 섬유로 변신

[익산=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달 초 미국 뉴욕의 유명 백화점에 한지(韓紙)로 만든 청바지가 입점했다. 패션 디자이너 한송이 선보인 이 청바지는 한지를 꼬아서 만든 실, 한지사(絲)로 원단을 짜 만들었다.

한지 청바지는 쌍영방적이라는 중소기업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지사를 생산하는 덕분에 나온 제품이다. 쌍영방적은 한송씨가 대표로 있는 퍠션회사 트로아와 5년간 공동개발한 끝에 세계 최초로 한지사를 상품화했다. 한지사는 독특한 소재라는 점 때문에 국제 패션쇼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으나 패션쇼 작품이 실제 상품으로 판매되는 것은 처음이다. 1990년대 이후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한국 섬유산업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다시 부활한 것이다.

◇’평생 한 우물만’ 최연소 공장장, 벤처기업 대표 되다

김강훈(50) 쌍영방적 대표는 1987년 쌍방울(102280)에 입사했다. 1970~1980년대는 한국 섬유산업이 전성기였다. 쌍방울도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섬유사업 수직계열화를 갖춘 굴지의 섬유회사였다.
김강훈 쌍영방적 대표이사. 자체 브랜드인 로하스 로고는 제품 원료인 ‘한지’라는 글자를 사람 얼굴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김형욱 기자
만만세세할 것 같던 섬유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동남아에 밀린 한국 섬유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타를 날렸다. 쌍방울은 BYC, 태창 등 익산의 대표 섬유기업과 함께 도산과 구조조정을 겪는다.

선배들은 하나둘 새 직장을 찾아 떠났으나 김 대표는 아직 한창때였다. 그는 늘어나는 빈자리 속에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쌍영방적 공장장(사업부장)에 올랐다. 쌍영방적은 1977년 쌍방울이 설립한 방적공장 자회사다.

그는 2004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 43세였다. 쌍방울의 새 오너는 쌍영방직을 정리하려 했다. 국내 방직공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를 주축으로 한 170여 공장 직원들은 자립을 선택해야 했다. 종업원지주회사 방식으로 쌍영방적을 인수했다. 자본금 1억원을 만들고 여기에 70억원을 더 대출받아 인수·운영비를 마련했다.

독립한 쌍영방적의 인수 3년 차인 2006년 18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부활하는 듯 했다. 그해 4억5000만원의 영업이익도 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공장 부지 소유주는 2007년 이곳 땅을 매각했다. 더 많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원했다. 이곳 부지에는 현재 OCI와 넥쏠론의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이제 막 자립한 쌍영방적에 새 공장을 지을 만한 여력은 없었다. 아예 새롭게 출발해야 했다. 자체 연구·개발(R&D)엔 성공했으나 상품화되지 않았던 한지사(絲)에 주목했다. 인근에 소규모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섰다. 2008년 ‘벤처기업’ 쌍영방적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독특한 아이템인 만큼 관심은 많았다. 전주시에 납품한 한지사 제품이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관저에 들어가며 입소문까지 탔다. 그러나 당장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는 착각이었다. 독특한 소재에 흥미를 보일 뿐 구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명 디자이너의 협업도 늘었으나 돈이 안 됐다. 하늘빔, 한지메리 등 독자 브랜드는 번번이 실패했다. 지금까지 번 돈을 몽땅 투입했다.

그러면서 차츰 벤처 기업으로서의 노하우는 쌓였다. 돈 되는 사업들을 하나씩 성사시켜 나갔다. 쌍방울을 비롯해 비비안, 비너스 등의 속옷과 인디안, 제일모직 로가디스 등 양복, 해피랜드 같은 아동복과 블랙야크, 닥스 등의 양말, 노스페이스 셔츠 등에서의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 자체 상표인 로하스(www.lohashanji.com)도 인터넷몰 판매가 증가했다. 올 들어서는 중국·미국 등지로의 수출이 시작됐다.

지난해 25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는 올해는 30억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월 10t의 생산 규모도 부족해 인근에 부지를 확보했다. 김 대표는 “종이로 실을 만들겠다고 나설 때부터 미친놈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회사를 팔라는 제안도 받는다”며 “5년 동안은 땅속으로만 뿌리를 뻗다가 이후부터 위로 크는 대나무처럼 쌍영방적도 5년 만에 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강훈 대표가 자사 한지사로 만든 속옷·양말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형욱 기자
◇’속옷부터 車 소재까지…’ 한지사(絲), 고부가가치 섬유 제품으

한지사는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를 1~4㎜ 너비로 잘게 썰고 이를 꼬아서 만드는 실(絲)이다. 이 실을 짜서 원단을 만든다. 면이나 폴리에스터 등 다른 소재와 비교해 냄새를 없애는 소취성과 향균성이 높다. 가볍고 습기도 잘 마른다. 면의 무게가 1.5라면 한지는 0.8이다. 친환경성도 높다. 매립 2개월이면 75% 생분해되고, 소각해도 유해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현재 아웃도어·속옷·유아 전문 의류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대신 복잡한 공정과 소품종 다량 양산 탓에 가격이 30~40% 비싸다.

쌍영방적은 한지사 양산 기술과 관련한 7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결혼식장에서 무심코 쥐어 든 종이테이프를 만지작거리다 한지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사실 종이로 실을 만드는 기술은 처음은 아니다. 일본에선 한지와 유사한 와지(和紙)를 이용한 제품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글로벌 제지 선도업체인 왕자제지를 비롯한 5개 회사가 종이를 이용한 섬유 사업에 뛰어들었다. 왕자제지의 기저귀 네피아는 국내에서도 고가 제품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섬유 기술력만큼은 쌍영방적이 이들보다 낫다는 게 김 대표의 자부심이다. 그는 “일본에선 제지 회사가 섬유 제품을 만들지만, 우리는 섬유 회사가 종이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섬유 기술력은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쌍영방적은 올 3월 친정 격인 쌍방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는 210수의 내의용 편물 원단을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기아차 콘셉트카 네모 실내 모습. 실내 시트와 천정 헤드라이너에 한지사가 적용돼 있다.
한지사의 활용은 단순히 의류·침구류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동차 내장재나 산업용 벽지로도 시범 적용되고 있다. 기아자동차(000270)가 지난 2011년 선보인 콘셉트카 네모(NAIMO)의 천정 헤드라이너와 시트엔 한지사가 적용됐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친환경성이 높은 한지사 내장재의 양산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도요타자동차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와지사를 이용한 내장재를 적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지를 세계적인 소재 사업으로 키워 사양 길에 접어든 국내 섬유산업에 대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전통의 닥나무 재배 산업까지 1~3차 산업을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강훈 대표가 한지사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지사는 맨 위 닥나무로 한지를 만단 후 이를 꼬아 아래의 실로 만다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김형욱 기자
◇김강훈 쌍영방적 대표는

1963년생. 1988년 전북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기 한해 전 쌍방울에 입사했다. 1997년 쌍방울의 법정관리 때 계열사이던 쌍영방적 공장장(사업부장)에 올랐고, 2004년 쌍영방적 분사와 함께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쌍영방적 부지가 매각된 이후 2008년부터 한지사 사업에 매진하고 잇다. 한지사 상용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지식경제부장관상, 2010년 전북도지사상, 2011년 중기청장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북 섬유산업협회 부회장, 한국니트산업연구원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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