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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5일 만에 156건·평균 보험금 1.2억 ‘대중 상품’ 된 신탁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지난달 5일 생명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도입된 지 1~2주일 만에 계약 100건을 체결했다. 삼성생명은 출시 후 닷새 간 총 156건 계약을, 교보생명은 출시 2주 만에 100호 계약을 돌파했다. 생명보험금청구권 신탁은 3000만원 이상의 사망보험금 보장 상품에 가입한 경우 은행·보험사 등 신탁업자와 계약을 맺어 가입자가 원하는대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
그간 신탁은 ‘돈 많은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실제론 대중적 수요도 많았다. 삼성생명의 신탁계약 156건을 분석한 결과 평균 보험금은 1억 2000만원, 3억원 미만 보험금 계약이 전체 62%로 나타났다. 보험금이 10억원을 넘어가는 신탁계약은 전체 15% 수준이었다. 3억원 미만 계약들은 자신이 사망했을 때 보험금이 유가족에게 대학졸업·결혼·출산 등 의미있는 시점에 쓰이도록 설계한 사례가 많았다.
교보생명의 보험금청구권신탁도 사망보험금 1억원 미만이 52%로 가장 많았고, 1억 이상~5억원 미만(41%)이 뒤를 이었다. 계약자 10명 중 6명이 40·50대로, 전체 가입자 중 여성 비율이 57%로 높은 것도 특징이었다.
은행에서는 유언대용신탁 전문 브랜드 ‘리빙트러스트’를 14년간 운영해온 하나은행이 맞춤형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워 은행권 1호 계약을 체결했다. KB금융은 KB라이프생명과 국민은행 프라이빗뱅커(PB) 채널 간 시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주식도 신탁 허용, 세제혜택 연계해 초고령사회 대비”
은행·보험업계에서는 어렵게 모은 자산을 자신의 뜻대로 집행하고 싶은 대중적 수요가 증명된 만큼 신탁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고령사회 종합자산관리 수요 충족을 위해선 수탁자산 범위를 넓히는 등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은행과 보험업계 공통적 건의는 수탁자산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전·답·과수원, 개인형 퇴직연금(IRP), 재건축·재개발 부동산은 신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부동산과 예금·주식 등 다양한 자산을 맡길 수 있도록 해야 고객들이 종합적인 자산관리 측면에서 신탁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농지법·도시주거환경정비법·근로자퇴직여급여보장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은행권이 가업승계 신탁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단 의견도 있다. 현재 가업승계 신탁에 가입하면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맞추지 못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의결권 행사 제한(15%) 규정으로 경영권 방어도 곤란하다. 상속증여세법·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금융권 가업승계 신탁을 활성화하자는 게 업계 의견이다.
신탁에서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합동운용’과 ‘업무위탁’ 등도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은행·보험사 간 협업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간병비 신탁, 교육비 신탁 등 다양한 상품이 나올 수 있다. 소액재산을 맡길 때 금융사 합동운용을 허용하면 운용보수를 수익원으로 쓰고, 고객에게는 수수료를 낮춰줄 수 있다. 이 또한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률·세무·의료기관에 신탁 업무를 일정부분 위탁하도록 하면 고객 자산을 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관리할 길이 열린다.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기부신탁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행 법 제도에서는 기부 재산에 발생하는 수익을 수취하면 기부받은 공익법인 등이 상속·증여세를 내야 하고, 기부자는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미국의 CRT·CLT 제도를 벤치마킹해 공익 기부와 사적 상속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부신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