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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버넌스 개혁이 자본시장의 장기 경쟁력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다시 말해 주가를 본질가치대로 평가하도록 할 수는 있어도 주주가치의 지속적인 상승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강화한 수요 기반이 혁신 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이들이 자본시장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자의 안정적 신뢰 형성이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돼야 한다.
강력한 수요 기반 정책은 일본에서 확인된다. 아베 정권부터 일본중앙은행과 국민연금(GPIF)이 일본 주식을 매입해 현재 일본 주식 시가총액의 14%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6%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니케이지수가 4만대로 올라섰던 것도 이 같은 강력한 수요 확충이 거버넌스 개혁과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요 확충 정책은 방법론에 있어 한계와 부작용도 예상된다. 수요 기반 확충을 민간금융이 아닌 행정편의의 공공부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으로 주식시장을 영원히 떠받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수요 기반인 가계부문은 여전히 금융자산 절반이 예금이고 저축이 자본시장으로 오지 않는다. 니사(NISA)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들의 자본시장 중개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수요기반이 공공이면 모험자본 공급도 공공이 할 수밖에 없다. 민간 저축이 모험자본을 통해 기업 혁신을 유도하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이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정책에는 고려되지 못하면서 자본시장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수요 기반과 혁신 금융이 민간금융의 전환을 통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자본시장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것은 저축에서 투자로 가계부문의 저축행태가 변화해야 가능하다. 가계 저축이 은행으로 가면 주식 수요 기반이 만들어질리 없고 그 예금이 경제의 혁신부문, 첨단부문으로 가는 모험자본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원리금을 보장하는 부채성 자금으로 강력한 자본규제를 받는 은행제도의 태생적 한계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예금으로 그나마 위험이 작은 국채를 과다 보유하다 파산했고 유럽 유니버설은행은 예금을 위험자산으로 운용하다 금융위기 때 부실화했다. 가계의 저축이 자기책임의 자본시장으로 유입돼야 모험자본을 매개로 경제와 자본시장이 장기 경쟁력을 갖는 성장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유럽의 자본시장 개혁은 정확히 이런 방향성을 정책화하고 있다. 개혁의 발단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가 혁신능력과 모험자본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 드라기(Draghi) 보고서에서 가계 저축이 예금에서 투자로 흘러가도록 ‘성장중심의 규제체제’로 자본시장 규제의 전환을 촉구한 데서 시작했다. 이후 범유럽 단일저축투자상품(SIU) 도입을 발표하고 사적연금의 자본시장 접근성 개선, 사적연금의 모험자본 투자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가계 자산의 절반이 예금이고 사적연금 개혁과 청년 자산 형성 정책이 주춤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상당한 것 같다.
결국 자본시장의 장기 경쟁력을 높이려면 밸류업 정책의 강화와 함께 가계 저축을 예금에서 투자로 전환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민간 중심의 자본시장 장기 수요 기반을 강화하고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모험자본 비율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