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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가 이날 2명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베이징발(發)로 전한 보도를 보면, 2017년 6월12일 웜비어 석방을 위해 의료진 두 명과 함께 방북(訪北)했던 조셉 윤 당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 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교섭 끝에 웜비어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튿날인 13일 혼수상태였던 웜비어를 실은 항공편이 평양에서 미국으로 막 출발하기 직전 북한 측 인사는 윤 전 특별대표에게 200만달러의 치료비 청구서를 내밀었다. 이와 관련, WP는 “북한의 성향을 감안해도, 이는 엄청나게 뻔뻔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에 윤 전 대표는 곧바로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틸러슨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중을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은 이후 윤 전 대표에게 청구서에 서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다만, 미국 측이 실제 200만달러를 북한 측에 송금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식통들은 WP에 “이 청구서는 재무부로 보내졌으며 2017년 말까지 미지급 상태였다”고 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이나 준비 과정에서 양측이 이 문제를 거론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WP는 전했다.
미국 측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인질 협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며 “그랬기 때문에 이 행정부 들어 인질 협상이 성공적이었던 것”이라고만 했다. 윤 전 대표도 “외교적 교류에 대해 확인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틸러슨 전 장관과 미 재무부 등도 WP의 논평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문제는 미국 측은 그동안 인질 석방 때마다 ‘몸값 지불은 없었다’고 공언해왔다는 데 있다. 아무리 ‘치료비 명목’이라고 해도, 또 실제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해도, 청구서에 서명한 만큼 논란을 피해 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10월 터기에 장기 구금됐던 앤드루 브런슨 목사가 풀려났을 때도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한편 웜비어는 2016년 1월 관광 목적으로 북한을 찾았다가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15년의 중노동(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웜비어는 17개월간 억류된 후 2017년 6월 혼수상태로 석방돼 미국으로 송환됐지만, 의식불명 상태 끝에 결국 엿새 만에 숨을 거뒀다. 이에 웜비어의 부모는 지난해 4월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으며 미국 법원은 올 1월 북한이 웜비어의 유가족에게 5억113만여 달러(약 561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 법원은 판결문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측에 보냈지만, 북한 측이 끝내 수령을 거부해 모두 반송 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