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농심과 삼양의 악연…우지라면부터 리니언시까지

김유성 기자I 2019.04.01 05:30:00

삼양식품, 라면업계 국내외 담합 소송서 '외톨이' 자처
우지파동·외환위기에 휘청, 100억원 넘는 과징금 경영 치명타
생존 위한 리니언시로 업계 배신…미국 법정서 원고 측 증인 진술도

신라면(사진=농심)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국내 라면업계 1위 기업 농심(004370)이 ‘담합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배경에는 원조 라면기업 삼양식품(003230)과의 악연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격으로 한 회사의 행보는 다른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라면가격 담합 판정이 대표적이다.

라면가격 담합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삼양식품은 이를 자진 신고했다. 담합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리면 과징금 100%를 면제해준다는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기반으로 국내 라면업체 4곳(농심·오뚜기(007310)·삼양식품·한국야쿠르트)의 가격 담합을 사실로 판단했다.

농심 입장에서는 삼양식품의 이 같은 행보가 치명타였다. 공정위의 칼날은 라면 1위 기업 농심으로 향했다. 졸지에 농심은 라면시장 독과점 업체로 라면가격을 조작한 기업이 됐다. 농심과 삼양식품 간 악연도 정점을 찍었다.

삼양식품도 할 말은 많다.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 출시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 라면시장을 호령했던 삼양식품은 2000년대 이후 힘든 시기를 보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한 삼양은 2005년에야 화의를 통해 경영권을 되찾았다.

100억원이 넘는 예상 과징금은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부담이었다. 리니언시를 활용해서라도 과징금을 피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생존을 위한 행보가 농심과 오뚜기에는 배신의 칼날이 된 셈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미국 송사에서도 농심과 삼양식품은 악연을 이어갔다. 삼양식품은 담합 사실을 인정하고 150만달러(17억 550만원)에 원고 측과 합의를 했다. 미국 소송비용과 배상금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삼양식품은 미국 내 원고 측 증인으로 채택까지 됐다. 공정위에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는 이유에서다. 농심과 오뚜기 입장에서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만 한국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삼양식품 측 진술이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농심 측 승리로 귀결됐다.

양사의 악연은 사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우지라면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공업용 쇠기름을 쓴다는 루머에 농심을 제외한 삼양식품과 오뚜기 등의 임원이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민 라면회사로 인정받았던 삼양식품은 이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6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삼양식품은 억울함을 벗었지만 1위 농심과의 격차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약해진 기업 체력에 외환위기까지 겹치자 삼양식품은 견디지 못했다. 삼양식품은 법정관리까지 들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2016년 삼양라면.
◇리니언시(Leniency)란

‘관용’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파생됐다.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당사자가 자진 신고했을 때 과징금 등의 처벌을 경감해준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기업 담합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담합으로 수혜를 본 기업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리니언시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리니언시 요건도 강화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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